혈액감염 의심 치료중 22일 0시21분 서거
한국 14대 대통령 당선돼 문민정부 출범
김영삼 전 한국 대통령(사진)이 서거했다.
1927년 12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혈액감염 의심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중 한국시간으로 22일 0시21분(시애틀시간 21일 오전 7시21분) 숨을 거뒀다. 향년 88세.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21일 오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다.
서울대병원은 새벽 2시(시애틀시간 21일 오전 9시)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긴급 브리핑을 가질 예정이다.
경남 거제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 전 대통려은 한국 9선의원으로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직을 맡았다.
이후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으며 1990년 민주자유당을 창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김 전 대통령의 삶도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1954년 28살의 나이에 나이에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초산 테러 사건 등의 탄압을 받았다. 1979년 10월에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이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유신정권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의원직 제명 파동을 일으켜 부마항쟁을 촉발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 동안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6월 민주 항쟁 이후 통일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타협없는 투쟁으로 인망을 얻었으나 1990년에 3당합당을 하며 재야인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3년에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32년만에 군사 정권의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예술인과 작가들의 반정부와 사회비판을 전면 허용하였고 군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해, 김남주, 마광수 등의 문학가를 석방하여 표현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였다.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차명 부정 계좌 단속 및 처벌,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명문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 등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였고, 신군부, 하나회와 관련단체 해체, 국군 내 사조직을 해산하고 정치군인들을 제재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 정권 관계자들을 모두 사법처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