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여유있는
마음
최근 LA를 방문하고 시애틀로 돌아오려고 공항에 갔다 참으로 난감한 경험을 했다.
정시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 운항이 두서너 번 연발 사인 뒤에 급기야 취소되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비행기는 자그마치 8시간이나 지나야 탈 수 있었다.
취소 이후 다른 비행기로 금방 타게 될 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던 200여 승객들은 처음에는 술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단 한 사람도 소리를 지르거나 데스크를 향해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던 필자의 모습이
순간 부끄러워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 잘 인내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소리를 내거나 불평을 하거나 화를 낸다. 필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며 한 자리에 머물러 본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저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을 ‘인종시장’이라고 표한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이라. 그 다양함 속에서 이렇게도 통일된 세련미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우리 조국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선진국으로 들어서기에는 역부족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줄을 서서 기다릴 줄 모른다는
점이다.
위기에 대처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됨의
덕목이다. 그렇지 못하고 조급하고 불평하며 화를 내는 것은 결국 위기
극복에 실패하는 어리석은 소행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도 조급한 자를 싫어하신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는 말씀과
같이 말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느긋하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상상만해도
함께 있고 싶은 멋진 사람일 것이다. 오랜 세월 목회를 하면서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그만큼 그런 성품을 소유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지역 출신이고 다른 인종이지만 우연찮게 한 비행기를 탈 기회를 가졌을 뿐인데도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평온하게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짜증나는 순간임에도 여유롭게 대처하며 선한 모습을
보여준 그분들의 모습은 아마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배움은 꼭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배울 수가 있다. 많은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배운 것이 행동이 되고 덕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인격자가 되고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연단을 거쳐야 한다.
대장간에서 수십 번 담금질을 거친 칼과 대량생산으로 급조된 칼은 단연 그 재질과 수명이 다른 법이다. 그래서
인생 여정에는 고난도 있고 행복도 있는 법이다.
이 같은 위기의 때에도 불평하지 않고 평온하여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로서 말이다. 멋진
봄의 계절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