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유진 중앙교회 담임)
“참전용사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도시 유진은 대학 타운입니다. 2만3,000여명이 재학하는 오리건 주립대학교와 2만5,000천여명의 2년제 칼리지
외에도 노스웨스트 크리스천 유니버시티, 신학대학 등 등록된 학생수를 합치면 유진 시민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학생일 정도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도시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윌라멧강과 맑은 수돗물을 공급하는
메킨지강은 청년들의 활력과 함께 유진을 생명력이 넘치는 푸른 도시로 만들고 있습니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바하 페스티벌이 개최되지만 유진에선 매년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에 걸쳐 약 3주간 오리건 바하 페스티벌이 펼쳐집니다.
올해 여름 바하 페스티벌 축제에 특별 초청을 받은 12명의 한국 국악인들은 유진대학 음대 강당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분들을 모시고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한국 고아들을 입양한 미국인들을 초청해 교회에서도 감사의 음악회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공연단 중에는 산상 보훈을 판소리로 공연하는 국악인 김수미씨도
포함됐습니다. 음악회에 참석한 청중은 대부분 한국의 국악엔 생소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거문고와 가야금, 해금의 은은하면서도 간장을 에이는
듯한 애절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청중은 넋을 잃고 귀를 기울이는 듯 했습니다. 서양의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등에 익숙한 이들에게 한국의 국악은 동양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노은아씨의
해금과 배수현씨의 피아노 합주로 '하늘가는 밝은 길이' 연주될
때는 분위기가 숙연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수미씨의 판소리 '산상
보훈'이 공연될 때는 숨소리마저 멈춘 듯 조용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말씀이 국악인의 입술을 통해서 200여명의 청중들 영혼에 깊이 파고드는 듯 했습니다.
공연 도중에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입양아 가정에 대한 감사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22년 전에 처음 이 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50~60여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 여섯 명으로 줄었습니다. 금년 여름에는 더 줄어서 세분만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참석했습니다.
매년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전용사분들 을 부축하여 무대로 안내한 후 준비한 선물을 증정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국악을 들을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무대가 있게 된 것은 풍전등화와 같았던 대한민국을
북한 공산정권의 남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태평양 바다를 건너 달려가신 여러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주신 미군 장병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 제 음성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청중석에서 들려왔습니다. 음악회가 끝난 후 준비한 푸짐한 한국의 음식으로 차려진 교회 식당
테이블로 안내했습니다.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한 분씩 먼저 앉혔습니다. 이어서 입양아와 그 가족들을 테이블로 모셨습니다.
18세 나이에 한국전에 참전해 낙동강 전투에 투입됐던 스미스씨가 저를
옆으로 불렀습니다. 안쪽 호주머니에 깊이 넣어 두었던 두 장의 편지를 펼쳐 읽어 주었습니다.
한 장은 자신의 친딸 발로니가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친딸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께 제가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 아시기를 바래요. 아버지께서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남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 몫을 담당하셨다는 사실 때문이어요. 아버지께서 한국에 파병됨으로 (우리 집에) 에밀리를 입양할 수 있게돼 고마워요. 아버지의 한국전 참가를 감사 드려요. 사랑해요, 아버지, 발로니 드림."
또 한장의 편지는 한국동란이 휴전된 후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된 손녀 에밀리가 쓴 것이었습니다.
에밀리는 양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나의 조국에서 군 복무를 해주신 할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할아버지께서 한국에 군인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제가 할아버지 집에 양손녀로 오지 못했을 거여요. 저는 할아버지께서 한국에서 참전해주심에 감사 드려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이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시기를 바래요... 에밀리 드림."
파란 눈의 스미스씨는 딸과 입양손녀가 보내온 두 편지 속에서
많은 행복을 발견한 것처럼 밝게 웃었습니다.
아름다운 윌라멧강과 맑은 매켄지강이 유진을 풍요하게 만드는
것 보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젊음을 바친 한국전 참전용사분이 함께 살고 있는 유진의 훈훈함이 더욱 풍요스럽게 느껴진 음악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