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숙 수필가(서북미 문인협회 회원)
12월에 작별을 고하다
매년 한 번씩은 꼭 얼굴을 맞대야 하는 12월이다.
헨델의 메시아 정기 연주회도 있고 성탄절도 끼어 있는 바쁜
달인데도 한 해의 끝 부분에 찾아오는 우울증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달이다. 해가 갈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것, 유독 나만 그런지 궁금하다. 우울증 때문에 외로운 것인지 외로우므로 우울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새순 치는 나무처럼
매년 하늘을 향해 뻗어야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길은 어지럽기만 하다. 지나온 세월이
아쉽고, 돌아갈 수 없는 아픔이 마음에 겹겹이 쌓인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몹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외로움을 통해 인격적 성장을 이루기도 하고 결과물로 좋은 열매를
따기도 하니까 외로움을 잘 다스려 내 삶에 약이 되게 하는 것이 12월의 과제다.
비, 바람을 견뎌내고 튼튼히 선 한 그루 나무처럼 오늘이란 땅
위에 선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슬픔을 견뎌내야 조금씩 철이 드나 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터무니없는 오해도 받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가볍지 않은 웃음을 웃을 수 있고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일도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나 보다.
올 한해 친구로 알고 믿었던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아서
나도 힘들었다. 나 홀로 버려진 듯한 느낌은 참
아프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는 것,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마음이 다치고 다친 마음을 꼭꼭 접어 섭섭함이라는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 놓고 돌아설 때 외로움과 우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가슴이 크레파스가 되고
만다.
그러나 다시 깊이 생각을 정리해보면 나만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까. 나도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분명히 주었을 것이다.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과감하게 섭섭함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이 세상 누구도 혼자이지 않은 사람이 없음을 생각한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어깨를 기대고 쉴 수 있는 든든한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속상한 마음을 위로 받으려고 믿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그때부터 또 다른 구설에 말리게 될뿐더러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운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어 버리고 만다.
의식의 질서가 파괴되고 사물조차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지경에 돌입하게 되면, 의식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불안과 공포가 춤을 추며
우울의 강에 나를 던져 넣고 허우적거리게 하고는 깔깔거리고 나를 비웃을 것이다.
마치 이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처럼 눈앞의 사물뿐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마저 가물가물 무화(無化)돼
가면 동물적인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그것에 대항한다 해도 이미 때는 늦어 어떤 무리수를 쓴다 한들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고통을 혼자서 겪어내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에 겪은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조그만 일에도 설왕설래하는 나는, 아직도
복수하기를 좋아하며, 나를 비판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을 잠잠케 만들지 못해 속을 끓이고, 내 정당함을 주장하는 한편 내 뜻대로 바로잡고 싶어 하는 속물임을 확실히 알게 되어 부끄럽다.
그러나 나의 못남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의 가슴을 울렸던 시심을 사랑했던 이유는 부끄러움은
우리의 황폐한 마음을 정화하는 위대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붓다 석가도 “부끄러워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은 모든 착한 마음의 근본이다. 부끄러움은 마치 쇠 갈퀴와 같아서 사람의 잘못을 긁어내고 추스르는
데에 아주 요긴한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그래서 새해에는 나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삶에 집중하고 싶다.
단단한 새 옷을 입기 위해 털갈이를 하는 새처럼 나도 새해가 오기 전에 털갈이하고 싶다. 그래서 좀 더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라는 미래가 우리 코앞에 와 있다. 미래가 좋은 것은 그것이
하루 하루씩 다가오기 때문이라는데, 미래가 크게 기대되는 이유는 날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모든 새로운 것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을 준비를 하니까 모든 외로움이 다 달아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