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하 목사 (오레곤 벧엘장로교회 담임)
소명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분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이유와 목적 없이 이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산다는 생각을 소명의식(calling)이라고 합니다.
이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왜 불러주신 것일까요? 또 무엇을 위해 불러주신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이유가
사역이 아니라는데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소명에 충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점차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면 소명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없어도 얼마든지 하나님에 관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소명 없이 바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분과 나눈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특별한 사랑을 나눈 제자였던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사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 1:4-1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누기 위해 힘쓰는 것이 소명에 합당한 삶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만을 향한 개인적이고
특별한 소명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창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소명과 자신의 소명을 견주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명에 관한 좋은 책을 썼던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우리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입증해야 할 것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백점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 앞에 빵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정이 제일 중요한 것을 명심하고 그 분 앞에서만 소명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한편 소명은 목표한 것을 끝까지 마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마지막 호흡을 다하도록 분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개인적인 특별한 소명은 SHAPE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S(Spiritual gifts 영적은사), H(Heart 마음), A(Abilities 재능), P(Personality 성격), E(Experience 경험) 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 겪은 고통스런 경험 속에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유익 중의 하나는 성품의 변화입니다. 고통은 소명을 이룬 뒤에 얻게 되는 축복을 담을 수 있는 성품의 그릇을 준비시킵니다.
세상에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도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되는 음식이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 때문에 부패하는 인간이 있고 발효되는
인간이 갈립니다.
고난을 소명 없이 바라본다면 어려운 환경과 비난하는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불평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성품이 부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소명을 품고 문제를 바라보면서 화해와 용서와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성품은 발효됩니다.
소명 없이 세상의 냄새로 부패할 것인가, 아니면 소명을 품고 예수님의 향기로 발효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날마다 소명을 발견하고 소명을 붙잡는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