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문인 협회원)
은혜는 반드시 돌에 새겨야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기리며
참새들이 방앗간을 스쳐 지나치지 않듯 잊으려 해도 9월15일만은 잊을 수가 없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통해 우리 조국을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건져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해 준 감격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면 낙동강 전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부산은 온통 벌집
쑤셔놓은 듯 아비규환 자체였다. 부두마다 부산을 빠져 나가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마치 부산은
독 안에 든 쥐가 빠져나가려는 모습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UN에 가입된 나라 중 16개국이 한국 전에 참전을 한다. UN군사령관으로 임명된 맥아더 장군은 뛰어난 통찰력과 경험, 이를
바탕으로 하는 판단력으로 인천상륙을 결심하게 된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반대하는 쪽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콜린스(Collins) 미 육군참모총장과 태평양 함대 사령관인 래드포드(Radford) 해군 제독은 인천의 높은 조수간만의 차에다 수로(水路) 문제 그리고 지형과 자연적 장해물로 인천보다는 군산을 선호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인천과 서울을 탈환해 괴뢰군의 병참선을 차단해 아군의 대량 희생을 막으려는 계획으로
콜린스 장군과 래드포드 해군 제독을 설득시켰다. 더불어 제 1해병
사단을 한국으로 급파하는데 동의했고 그 해 8월29일 합동참모부(JCS)는 이 같은 맥아더 장군의 계획을 승인한다.
마침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국제연합(UN)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해 6ㆍ25의 전세를 뒤바꾸어 놓는다. 9월15일 오전 6시
한미 해병대가 월미도에 상륙해 작전개시 2 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고,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 7 보병사단, 제 1 해병
사단은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 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한국 2 개 대대와 제 1 해병 사단은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함과 동시에 20일 주력 부대가 다시
한강을 건너 9월 26일 정오에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 승리의 막은 내려진다.
만일 인천상륙 작전의 승리가 없었다면 6ㆍ25 사변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을 뿐 아니라 부산밖에 남지 않은 한국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번영의 반열에 올라 도움을 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는 유일한 나라로
탈바꿈할 수가 있었겠는가 생각을 해본다.
만일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남한도 틀림없이 괴뢰
정권의 지배하에서 지금 북한과도 같은 기아와 억압 속에서 짐승같이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당시 UN군 총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잊어서는 안 될 은혜를 물에다 새겨놓고 금방 잊어버리고 마음 속에 그 흔적조차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기에 한때 인천 앞바다에 세워진 고(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헐어 버리려는 불순한 세력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인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반드시 돌에 새기라는 옛말에 항시 귀를 기울이며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