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이 흙수저가 네 수저냐?
초등학교 동창이 밴드에서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향을 멀리 떠나 살기에 동창회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동창들이 내 소식을 궁금해할 만도 했다.
우리
동네는 빈농들이 모여 사는 시골이었다. 70년 후반, 소작농을
포기하고 도시의 공장 노동자가 되거나 자영업을 찾아 이주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폐교된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졸업하던 80년
초에는 그래도 졸업생이 80여명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한 기억들.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저기 알아보니, 4학년 때 반장을 한 미숙이는 명창이
되어 활발하게 공연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만수는 찰흙으로 뭐든 잘
만들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듬뿍 받아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아랫집에서 같이 공부하던 대진이는 의사가 되었다. 나를
비롯하여 교사가 된 아이들이 서넛, 그리고 회사에 다니거나 개인 사업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제일 보고 싶은 친구는 섭이다. 섭이는 우리 집에서 몇 집 건너 살았다. 3학년 때, 방과 후 선생님 일을 도와 드리고 가끔 같이
집에 오게 되었다. 하굣길에 산 보름달 빵을 항상 똑같이 반으로 쪼개 주던 아이다. ‘섭이는
아저씨가 다 되었어.’ 라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철렁하다. 당연히 아저씨가 되었겠지만, 고생을 했다는 말인가 싶어서다.
가진 것 없는 시골 아이들이 맨몸으로 도시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일이 어디 쉬웠으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아이들은 도시로 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지만 혼자 자취를 하거나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고등학교에
못 간 아이들은 공장에 다니며 야간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래도 80년대에 졸업한 우리는 나았다. 70년대, 우리 윗형제 세대는 공장의 제봉사로, 버스 차장으로, 부잣집 식모로, 기술을 배우러 도시로 갔다. 부모에게 받은 것
한 푼 없이 도시의 밑바닥에서 고생했어도, 부모님께 돈을 부치고, 동생들을 거두며 열심히 살았다.
30년이 훌쩍
지나, 국제 전화로 통화하게 된 공숙이는 어제까지 만났던 친구 같다. 수다가 끝나니, 친구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을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너무나 가난했던 우리 집, 그러나 나는 가난해서 크게 불행하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돈을 벌고 있는 형제들 덕분에 힘들게라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가정 형편이 더 어려운 친구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여상을 가거나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해야 했으니까.
근래에 여기저기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골학교 흙수저 아이들은 사회에 진출하여 나름대로
자기 꿈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 임명된 경제 각료도 흙수저 출신이고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흙수저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수저 계층론은 “모든 사람이 은숟가락을 물고 태어나지는
않는다”는 서양 속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고 부모의 부가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부의 세습에 대한 약자의 절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개천이 복개되어 용이 날 수 없다는 우스개로 변질되었다. 면접시험에서,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질문하는 사회, 어려움을 극복한 개인의 경험, 창의력이나 다양한
재능보다 외적인 스펙이 중요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성형이라도 해서 취업하려는 세태다. 살인적인 물가, 취업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젊은이들이
노력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대신에 수저계층론을 말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누구나 수저를
사용해서 하루 세끼 밥을 먹는다. 하지만, 하루 세끼 먹을 때, 금수저나 은수저로 먹으면 더 행복한가? 젊은이들이
좌절하며 흙수저를 탓하고, 다른 사람의 성취를 그 사람의 배경이 좋아서일 거라고 일단 비아냥대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났든지 간에 노력에 대한 대가는 모두가 동등하게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이 금수저가
네 수저냐?” “아닙니다. 제 수저는 흙수저입니다.” 흙수저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스스로 멋진 백금 수저, 도자기
수저가 되고, 나무 수저라도 깎아 보려는 희망이 있는 사회… 자식들에게 자기 세대보다 더 기회가 닫힌 사회를 초래한 기성세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