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하 목사(벧엘장로교회 담임)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는 새 신앙
영국의 한 기자가 세기의 극작가 버나드 쇼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책들이 불에 타도 남아 있어야 할 가치 있는 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성경의 욥기라고 생각합니다. 욥은 가난해도 병들어도 자식을 잃어버렸어도 아내가 배반했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에게도 욥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일어난다면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고난이 걸림돌이 되어서 믿음을 포기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고난이 디딤돌이 되어 믿음이 성숙의 계기가 됩니다.
고난이 신앙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에는 어떤 하나님의 숨은 계획이 있을까요?
첫째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 같이 변화시킵니다.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고 고백합니다.
비슷한 고백을 베드로 사도 역시 했습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 1:7).” 여기서 “연단”은 헬라어로 “도키모스”라는 단어인데 당시 금세공업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세기 로마 제국에는 금은 세공업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사관은 1000도가 넘는 열을 견디고 나온 “정제된 순금”에 한해서만 “도키모스”라고 외치고 합격시켰습니다.
즉 용광로가 금속의 불순물을 녹여 순금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진정하게 변화시켜주고 하나님 앞에서 “도키모스” 즉 합격 판정을 받게 해줍니다.
그러니 형식적인 우리의 믿음을 순전하게 변화시켜서 장차 하나님께 칭찬 받게 해 주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 고난은 주님에 대한 간접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을 직접적이고 체험적인 지혜로 변화시킵니다. 고난을 통과한 뒤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역설적이지만 고난이 주는 가장 큰 축복은 우리를 하나님만 바라보는 임재의 자리로 옮겨 주는 것입니다.
고통의 신비는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가까이 나갈 최적의 환경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한 상황이 아닌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욱 섬세한 하나님의 손길과 능력의 오른 손을 체험하게 됩니다.
셋째 고난을 이기길 원하는 성도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푸는 궁극적인 열쇠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뒤에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의 고난은 결코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하면 고통 속에 숨겨둔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과 연결되는 신비를 맛보게 됩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신비 중에 하나는 한 길이 닫히면 다른 한 길이 열리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육신의 생명의 길이 닫혔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닫혔기 때문에 그 분의 영생과 부활의 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고난 중에 문제만 바라보고 인생에 닫힌 기회만 바라보면 그 문제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합니다. 지나간 취업과 결혼의 기회, 이미 닫힌 성공의 기회, 건강의 기회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대신 인생의 열린문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분은 내 인생의 어떤 닫힌 문도 다시 열어 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씨름하고 있는 문제에서 시선을 떼십시오. 그 대신 해결사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생각지도 못한 길을 내고 계신 것이 보입니다.
비록 이해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어도 주님의 임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밖에는 인생의 가혹한 겨울이 뿜어내는 맹렬한 추위와 아픔과 고통이 있어도 주님은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 안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놀라운 평안이 있습니다. 물론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고난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평안이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인생의 순례를 마치고 본향에 입성하는 날 ‘수고했다’ 우리를 칭찬해 주시며 안아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