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낙엽과 쓰레기
낙엽(落葉)은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히브리어로 ‘Aleh’라 하는데 집마다 떨어져 땅에 뒹구는 것이
낙엽이다. 요즘 같은 계절이면 집들마다 낙엽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꽃이
봄의 전령사이고, 눈이 겨울의 전령사라면 낙엽은 가을의 전령사이다.
바로 어제, 동네 아낙네들이 자기 집 앞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마구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넣는
것을 보았다. 물끄러미 이 광경을 보면서 낙엽과 쓰레기의 차이를 생각해봤다.
쓰레기는 쓰다 버린 것으로 그 종착역은 쓰레기장일 수 밖에 없다. 낙엽과 쓰레기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쓰레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낙엽은 사정이 다르다.
더불어 있을 수가 없어 가지와 떨어져야만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고, 이러다 보니 저렇게 거리를
뒹굴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그 낙엽을 아끼고 사랑해야만 하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낙엽의 전신인 그 푸른 잎들은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쬘 때 그것을 막아주기 위해 우산이 되어 주었고, 또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부을 때는 피해갈 수 있도록 지붕이 되었다. 게다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면 썩어서
거름이라도 되려 하는데 그것을 쓰레기통에 담아 쓰레기와 같은 취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생명이 없어진 낙엽에 대한 애착을 가져보는 것은 우리네 삶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함께 호흡하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나간 저 앙상한 나무를 보라. 외톨이가
되어 두 팔을 펴고 하늘을 향해 활짝 서 있기는 하나 낙엽들이 떠난 뒤부터는 그 기운이 한풀 꺾여 짝 잃은 거위가 제 짝을 찾는 신세처럼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기에 쓰레기 취급했던 낙엽을 조금 더 대접해주는 마음가짐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생을 마감할 때 입는 아름다운 수의를 사람만이 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의 일생과 비교할 수도 없이 짧지만 낙엽 역시 파릇파릇 돋아난 푸른 잎으로부터 시작해 가지에서 떨어지기까지 일생 동안 자신이 같이
살았던 나무는 물론이고 나무와 같이 호흡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즐거움을 주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소를 생각해보자. 소는 살아있을 때 논과 밭을 갈아주고, 자녀의 학비가 돼준 뒤 숨을 거두게 되면 그 살과 뼈마저도 우리에게 다 주고 가니 낙엽과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도로에 뒹구는 낙엽을 그냥 쓰레기라고만 생각하지 않는 마음만 있어도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은 크다. 떨어지는
낙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낙엽이 떨어져야만 인고의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이 되면 또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부르심’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새 봄에
돋아나는 새 순을 위해 낙엽이 되듯 영원한 삶의 약속을 이어받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쓰레기 같은 찌꺼기는 불로 태워 버리고 거름이 되는 낙엽처럼 산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담은 실천의 삶과 생활이 돼야 할 것이다.
묵은 해는 이미 쏜 화살이 되어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새 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이순간부터라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득 담아 자기 자신과 이웃을 위해 값진 것을 담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