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나를 찾아서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답변이 궁색해진다.
평생 성공 가도를 달리던 친구가 있다. 큰 품과 탁월한 능력으로 경영 일선의 일인자였다. 자녀도 잘 성장했고, 누가 봐도 박수를 받을 만한 그가 은퇴 후
그의 아내로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그의 아내가 그로부터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친구와 비슷한 성품인데, 어떻게 나는 건재한 걸까. 독립적이고
논리적인 내 아내와 의존적이고 감성적인 그의 아내와의 천성이 다른 결과일 것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이해했다. 똑같은
말이나 행동에 어떤 이는 크게 개의치 않고, 또 어떤 이는 반대로 못 견딜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고 보면 평생 함께 사는 아내 또는 남편의 본성을 서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직장에서의 일이다. 직원 두 명에게 같은 일을 맡긴 뒤, 언제나처럼
‘수고했다’, ‘네가 있어 든든하다’라고 말해 주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상사의 든든하다는 칭찬 한마디가 한 친구에게는 크게 와 닿아 그를 행복하게 하여 회사 일에 더욱 충실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든든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와 닿지 않아 시큰둥했다고 한다.
어깨를 다독여 준다든지, 거기에 더욱 따뜻한 말을 해주어야 칭찬을
받았다는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칭찬할 때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면, 반대로 꾸중해야 할 때라면 얼마나 조심스러울까.
카멜레온을 닉네임으로 쓰는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간단했다. 환경에 따라 잘 변한다는
뜻의 카멜레온으로 불리면,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만약 내가 ‘카멜레온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니, 나를 변덕쟁이로 보다니, 이럴 수가…’하는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똑같은 표현도 어떤 이는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이는 충격에까지
빠질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참으로 복잡한 인간의 다름을 본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확연히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볼 때, 과연 타고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본질은 ‘본디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모습’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뀌는 것이 있다면, 아마 살아가면서 교육이나 사회의 경험에 의해
쌓인 지덕체(智德體)로 각자의 인격이 다듬어지는 것이지 싶다.
누구든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에너지를 갖고 태어나는데, 그 중 어떤 에너지를 많이 쓰느냐에 따라 본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나는 참다운 나를 알고 싶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나의 본질을 찾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나의 본질의 장점은, 인내심과 일관성, 남을 이해하고 배려함, 공정한 중재력과 신뢰감, 조직의 조화와 화합력, 그리고 도량이 넓은 포용력이라고 했다.
한편, 단점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보수적 태도, 사소한
것에 대한 무감각, 지나친 겸손, 그리고 꿈쩍도 하지 않는
고집이라고 했다.
나의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소홀히 생각해 온 나의 본성이 장점으로 다가왔을 때는 보물을
발굴해 낸 것 같았다. 반면 내가 어렵사리 숨겨 왔던 단점들이 그대로 드러나서 황당하기도 했으나, 오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낸 듯 새로 태어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나의 장점은 계속 키워나가야 할 부분이고, 나의 단점을 보완해 나아가도록 그가 정리해 주었다. 내가 과묵하고 관대하여 사람을 선 없이 수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갖는 것은 좋지만, 어떤 일에 단호하게 결정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며, 지나친 겸손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이었다.
이제라도 나의 본질을 찾아 확인하고 보니, 훨씬 자신감이 생기고 새로운 에너지가 솟는다. 좀 더 젊은 나이에 고민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행이지 싶다.
우리가 나의 본질을 찾고, 상대방의 것도 인지(認知)한다면,
가깝게는 자신, 가족,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
모두 이해의 폭을 넓혀, 서로를 북돋으며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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