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 (오레곤 유진 중앙 교회 담임)
초원의 집
대학의 도시 유진은 학사 일정에 따라 삶의 리듬이 활력을 찾습니다. 새 학기가 다가오면 학교 주변의 집들은 물론 도시 곳곳의 아파트들도 산뜻하게 단장됩니다.
이민 교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유학생들, 임기를 끝내고 돌아간 교환 교수님들과 그 가족들, 연수 공무원들과
가족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워 줄 유학생들이나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9.11 사태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유학 오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오리건 주립대학에 등록된 한국 유학생들의
숫자는 다른 외국에서 온 학생들보다도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2001년도를 넘기면서 유학생들의 숫자는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도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이곳을 떠난 한국학생들과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교우들은 지난 해만도 30여명이나 됐지만 새로 등록한 학생이나 연수를 온 가족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고스란히 비워진 채로 한 해가 흘렀습니다. 방문 학자들도, 연수차 파견된 기업체나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미국의 이민 교회들은 넓은 태평양 만큼이나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조국의 경기에 매우
민감합니다. 유학생들의 숫자를 보고 조국의 경제 상황을 추측하는 교우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곳을
찾아 오는 유학생들이 계속 줄어 들면 언젠가는 교회의 존립마저도 위태롭게 될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새벽기도회는 물론 수요 기도회 때에도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조국의 경기가 좋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곳을 찾아 오는
유학생들이 많아지기를 빌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민 교회의 전도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야채를 심어 나누어 주던 교회의 농장 안에는 소박한 집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집은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앞이 환하게 트인 1만2,000평의 넓은 농장을 바라 보고 서있는 이 집을 유진을 찾은 한국의 방문객들은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긴 여름이 지나자 유학을 준비해 왔던 한국 학생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4살 때
남미로 이민을 갔던 한 교민이 오리건 주립대학에 입학이 확정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기숙사 입사하기까지 잠시 머물 수 있는 거처를 찾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맞는 기쁨이 솟아 올랐습니다. 공항으로
달려가 맞이한 그 학생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활기찬 청년이었습니다. 지난 해부터 유학을 준비하며 기도하던
자연양도 유진에 도착하였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몇 일 후에는 부산의 한 대학교 교수님이 연락을 해 왔습니다. 비록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도움이 필요하여 연락을 취한다는 말과 함께 아파트에 입주하기까지 얼마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임시거처를 안내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 주었습니다.
공항에서 이 가정을 반갑게 만나 농장으로 안내하였습니다. 한국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오 사무관이 유진 시청에 2년간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생소한 유진 정착을 위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온 것은 2주 후였습니다.
농장 안의 초원의 집은 오랜만에 활기를 찾았습니다. 대구의
한 대학교 교수님이 가족과 함께 방문교수로 유진에 오는 데 교인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안내와 도움을 줄 수 있겠는지 조심스럽게 타진을 해 왔습니다. 기쁘게 초원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군에 입대하기 위하여 휴학하고 5년 전에 한국으로 떠났던 현민군이 복학차 유진 공항에 도착하였다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한 걸음에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초원의 집은 현민에게도 소중한
거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맑은 공기가 인상적이라고들 했습니다. 물은 유황천 지하수라 마치 온천에 온 것 같다고 좋아하였습니다. 집
주변을 거니는 사슴을 보는 즐거움도 아이들에게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농장을 거쳐간 가족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처음으로
교회 문턱을 밟는 걸음들이었습니다. 예배 후 식탁에 둘러 앉아 정겨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은 오랫동안
사귀어 온 정다운 이웃들 같았습니다. 20년 전에 힘겹게 마련 해 두었던 농장이 소중한 전도의 요람지로
사용이 될 줄은 주님만이 알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