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인 목사(포틀랜드 갈보리 장로교회 담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비전(1)
최근 전 세계인의 정치적 관심을 모은 두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만남을 가능하게 만든 4월27일의 남북 정상회담입니다.
이들 만남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입니다.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 논의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이 도와주어야 하고 하나님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저 유명한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유대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왕국으로 갈린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남방 유다는 바벨론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멸망한 시점에, 유다 왕국으로부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이라는 젊은 예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유다가 완전히 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이 선지자의 가슴 속에서 탄생한 중요한 민족사적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과연 분단의 상처를 입고 무너진 그의 조국이, 다시 통일된
하나의 나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는, 19절의 말씀처럼 “그들이 내(하나님)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에스겔
37:19). 또 하나의 메시지는 이미 그에 앞서 계시하신 “그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37:17).
상충되게 들리는 이 두 개의 메시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손으로 통일을 이루시겠지만, 여전히 우리 손으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질 민족의 통일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일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평화의 노력입니다.
에스겔37:26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하나님은 예언자 에스겔에게 막대기 두 개를 가져오게 하신 후, 한 막대기에는 유다라고 쓰게 하고, 다른 막대기에는 에브라임(북 이스라엘을 대표하여)라고 쓰게 한 다음, 그 두 개의 막대기를 하나로 합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단된 민족을 하나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통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소원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통일을 향한 한국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하나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미국과 북한, 한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이 단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고 많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 이해를 떠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이 땅의 평화 사역을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의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그(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인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셔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둘째는,평화의 리더십입니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한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37:22). 그 임금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 대답이24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리라”… 통일 국가의 리더십은 바로 다윗의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은 문자 그대로의 다윗이기보다 다윗이 보여준 리더십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요, 긍휼의 리더십이요, 평화의 리더십이었습니다.다윗은 힘으로 북쪽을 흡수 통합하려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는 북의 통치자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고 함께 슬퍼하며 북쪽과 남쪽의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얻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이 정한 시점에,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함께 옹립한 민족의 지도자로 추대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피를 흘리지 않고 이스라엘의 통일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