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유진 중앙교회 담임)
양로원 음악회
매년 연말부터 정월 말까지 한달간 주말 마다 지역 양로원들을 찾아 위문 공연을 해 온지도 어언 15년이 넘었습니다.
가을부터 성가대원들은 이 행사를 위해 매 주 몇 차례씩 모여 찬송가와 가곡을 준비했습니다. 여성 대원들은 고운 한복을 차려 입었습니다. 남성 대원들은 양복차림에 나비 넥타이를 두르고 양로원에 도착합니다. 마치 고향의 연로하신 부모님의 집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을 느낍니다.
양로원에서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하여 점심 식사 테이블을 이미 깨끗하게 정돈시켜주었습니다. 양로원 입주자들은 비교적 건강한 노인분들이긴 하지만 휠체어에 앉은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고 참석한 분들도 있었고 도우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양로원 식구들은 거의가 백인들이었습니다. 멀리 동양에서 찾아 온 우리들을 맞이하는 노인들의 눈빛은 따뜻했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부모를 찾아 온 자녀들을 맞이한 것 같은 밝은 얼굴들이었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기도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일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침묵을 깨고 이렇게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들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 식구들이 미국의 양로원을 찾아왔습니다. 우리 나라가 북한 공산군의 공격을 받고 풍전등화와 같은 위험에 빠졌을 때 용감한 미국의 청년들이 달려와서 우리 나라를 구해 주었습니다. 오늘 그 은혜를 기억하며 양로원을 찾아왔습니다. 이 분들에게 우리의 감사의 마음이 전달되게 해 주시고 위로의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의 공연 프로그램은 성가대원들의 합창곡과 가족 창으로 준비했습니다.'인애하신 구세주여'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을 부를 때는 여러 노인 분들이 함께 불러 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불러 온 애창 곡들 같았습니다. 1절과 2절은 우리 말 가사로, 3절은 영어 가사로 불렀습니다. 성가대원들이 부르는 영어 가사는 약간은 서툰 듯 했지만 청중들은 신기한 듯 소리를 내어 합창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방문 중인 태연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태연이를 가운데 세우고 '고향의 봄'을 불렀습니다. 아름다운 가족 창이었습니다. 늘 해 오던 어린이 부채춤은 아쉽게도 그날 무대에는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여러 해 동안 수고해 주던 어린이 부채춤 단원들이 고등학생이 되기도 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부채춤을 공연하면 미국 노인들은 너무나 신기해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큼직한 부채를 들고 무궁화 꽃을 만들기도 하고 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만들어 내면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부채춤을 지도해 온 최 권사님은 태연이와 그의 두 백인 친구를 벌써 몇 주째 연습시켜 왔습니다.
정월에는 무대에 올릴 꿈이 이루어 지기를 우리는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무대 바로 앞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는 'Korea'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수 놓인 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 그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의무병으로 파병된 참전용사였습니다. 자신이 한국 전쟁에 참가한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원더풀 코리아!“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 주었습니다. 젊은 군인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거수 경례를 하더니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해 주었습니다. 양로원을 찾아 주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할아버지의 체온이 전해왔습니다. 다음 달 개최할 한국전쟁 참전 용사 및 입양아 가족 초청 음악회에 꼭 초청하고 싶었습니다. 재미 집사님은 그 할아버지의 우편주소를 받아 주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얼굴은 소녀처럼 밝았습니다. 레이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한국 아기를 손녀로 입양해 길렀다고 했습니다.
그 손녀는 공부도 잘해서 오리건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라며 자랑했습니다. 이곳에서 수 만리 떨어 진 한국에서 고아를 입양해 훌륭하게 길러 준 그 할머니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난 후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공연팀이 부른 노래가 실내에 가득 차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양로원 사무원이 우리 대원들을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향긋한 주스와 다과 접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