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젊었을 때 정말 많이
불렀던 복음성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 널 위하여”입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사랑으로 인도하시네/누군가 널 위하여/누군가 기도하네/네가 홀로 외로워서/마음이 무너질 때/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대충 이런 가사입니다.
곡조도 매우 애절해 젊은 날의 빈 가슴에 위로도 되고 공감도 돼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나는 20대 학창시절 부모님이
원치 않으시는 신학을 공부하느라 혼자 아르바이트에 살면서 너
무나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미국에 이민온 뒤에도 30~40대를 혼자 교회를 개척하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외로움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16시간이나 되는 긴긴 밤, 비 내리는 겨울의 시애틀
환경은 혼자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일갈할 수 있다는 오기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지난 18일 저녁 6시경 청담동 오피스텔에서 인기가 한창인 젊은
아이돌이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해 한국은 물론 그의 팬이 있는
모든 나라에서 큰 충격이 일고 있습니다.
샤이니의 김종현이 주인공입니다. 이제 27살의 꽃미남이요 인기를 한 몸에 안고 부귀와
명예를 누리던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맴버였던 그는 그렇게도 허무하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의
유서 한 장이 오늘 우리들에게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울이 뼈 속까지 나를 삼켰다. 나는 이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뿐이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으나 실상은 혼자였고 그래서 너무나도 외롭고 우울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런 환경을
견디다 못해 끝내 자살로 마감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27살 김종현
만의 고백일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딘가에 쏟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모두 다 그런 심정이고 아픔이며 또한 고백일 것입니다.
이민 초기에는 생존의 벽에 부딪혀 외롭고 피곤하고
아픈 것이 사치처럼 보였습니다.
두 잡, 세 잡을 뛰며 뼈가 부스러져라 일하며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자식들과 정들 시간을 놓쳐버렸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조차도
모른 채 달려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조금씩 환경에 익숙해지고 노력의 대가로 웬만큼 살만해지자
이웃도 없고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는 외톨이가 돼버린 것입니다.
외로워도 외롭다고 말 할 사람이 없는 것이 어쩌면 오늘 우리들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는지
도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겪어온 70~80년대의 이민 풍속도였습니다. 아니라고 손사래 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세월에 떼밀려 은퇴자라는 딱지가 붙은 채 돌아서 있으면 저절로 삶이
허무해 보이고 혼자 남은 세상이
더욱 넓어 보이기만 합니다.
누구
하나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초기 이민자로 낯선 땅에서 너무나
애를 쓰셨습니다”라고만 말해줘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고마울 것 같은데 불행하게도 그 흔한 인사 하나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1세 이민자들의 서글픔이요 외로움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우릴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 있다는 복음성가의 가사는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누군가를 위로해주기 위해 쓴 누군가의 글이 아니라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자신을 만드시고 에덴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무상으로 내려주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한 탕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우리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 귀한 성탄절이 인간
위주의 상업적인 계절로 변절됐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계절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도 낮고 천한 세상에 사람이 되어 친히 강생하셨을까요? 이유는 오직 하나
입니다.
김종현처럼 외롭고 우울한 마음에 생긴 생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같은 희생과 사랑의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는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외롭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