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상(네이버 파워블로거, <시애틀 우체부>저자>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핵이 아니라 총기난사다
지난 해,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며칠동안 라스베가스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후버 댐, 그랜드 캐년 관광을 위해 간 것이긴 했지만, 밤마다 저도 부모님을 모시고 라스베가스의 '스트립'을 걸어다니곤 했습니다.
라스베가스는 말 그대로 불야성, 밤에 더 화려한 도시이며 원래 도시가 생길 수 없는 지역에 환락의 불야성을 만들고자 했던 마피아 벅시 시걸의 꿈이 베가스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류 최대의 콘크리트 건축물'인 후버 댐을 통해 발전이 이뤄지면서 가능해진 것이었지요.
인간이 갖고 있는 향락 추구의 본능을 만족시키는 도시로서 이곳은 그 기능을 충실히 해 왔었습니다. 오히려 마피아들이 자기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마피아들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시절엔 이곳에서 치안은 경찰이 아닌 마피아들을 통해 이뤄진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90년대 말엽, 그리고 2000년대를 거쳐 이런 환락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 왔었습니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카지노나 매춘 같은 기존의 향락산업보다는 리조트나 엄청난 규모의 부페 식당 같은 것들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노력이 어느정도 결실을 맺었다는 것을 저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악명높았던 매춘 거리도 어느정도 정리가 됐는지, 저는 그곳에 있는 동안에 매춘부들을 보지 못했을 정도니까.
대규모 콘서트도 자주 열렸고, 야외 콘서트도 제가 있는 동안 계속해 열렸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페뷸러스 라스베가스'가 제대로 자리잡았습니다.
게다가 이쪽으로 인구 유입이 계속되며 도시의 규모 자체도 많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총격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범인은 이미 사살됐다고 알려진 60대의 백인 노인입니다. 속보가 계속 뜨고 있으니 범행의 동기 같은 것도 어느정도 윤곽이 밝혀지겠으나, 조직적 범행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으로서 다시 미국에서 또다시 미국판 '공안의 광풍'이 불 거란 겁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볼 때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다시한번 크게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9.11 테러가 미국 내에서 비행기에 탑승할 때 안전을 이유로 온갖 수치스럽기까지도 할 수 있는 검색을 받도록 미국인의 생활을 바꿨다면, 이제 고층 호텔에 묵어야 하는 손님들은 혹시 총기를 가지고 있는지 수색을 받아야 할 지경이 될 겁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이런 검색들이 있어야 하겠지만, 미국인들은 이제 자기들의 삶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규제를 받아야 하겠지요.
결국 문제는 총기 소유의 합법화가 그대로 존속돼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 겁니다. 늘 끝없는 논쟁이지요. 미국에서 총기 소유 문제는 헌법 개정 사안인지라, 총기 규제에 관한 위헌이 분분하겠지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개척기를 거치면서 총기 소유가 합법화됐고, 지금까지 이 법에 대한 개정 요구가 매번 이런 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NRA라고 하는 막강한 단체의 로비와, 개인의 총기 소유가 불법화되면 큰 이익을 상실하게 되는 총기 생산업체 - 즉, 미국의 실질적 파워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방위산업체들 - 들의 반발로 이런 비극은 계속 방치돼 왔습니다.
늘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사회 부적응자의 일탈, 또는 테러리스트의 공격 따위로 이야기해 왔던 미국에서 이번 사건으로 어떤 여론이 일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하는 것은 슬프게도 꽤 '그냥 비슷한 패턴'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아마 '극우 기독교계 백인'이거나, '와코 사건'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던가... 이런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지겠지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마음아픈 것은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래를 빼앗겨 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 중엔 혹시 나중에 미국을 진정 다시 위대하게 만들었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냥저냥 자기의 삶을 살아갈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개개인의 미래가 아니라 '미국의 미래'였을 겁니다.
총기 규제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트럼프가 이 사건으로 인해 어느정도 더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이 사건으로 위기를 느낀 총기 생산업계가 트럼프를 더 강하게 지지하는 아이러니컬한 일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총기는 반드시 규제돼야 미국의 미래가 있다고, 저는 강하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쉽게 남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게 총기입니다. 총은 가지고 있으면 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듭니다. 만일 대한민국에서 총기 소유가 가능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총기 소유가 합법적이고 오랫동안 나름 합리적으로 총기 관리를 해 왔다는 미국에서도 해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이런 총기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총기가 없기 때문에 아마 자살자가 그렇게 많을 겁니다. 이곳에선 총기가 있기 때문에 자살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격이 더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요. 우울하고 가슴아픈 일입니다. 미국 안에서 총기 규제가 반드시 실현되는 그 날까지, 저도 작은 목소리나마 하나 더 보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미국 시민이니까요.
미국을 위협하는 건, 북한의 핵이 아니라 어디선가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입니다. 이 익명의 위협에 떠는 모든 시민들이 다 '미국' 이니까.
이 표 하나만으로도 미국의 총기 사건의 끔찍함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