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인 목사(갈보리장로교회 담임/오레곤-밴쿠버 한인교회연합회 회장 )
‘동해(East Sea)’ 명칭 되찾기 운동(2)
동해표기
문제의 제기
국제사회는 1993년 이후 줄곧 한국과 일본간의
바다명칭에 대한 분쟁을 예의주시해왔다. 두 나라가 이 바다를 각각 동해와 일본해로 공인해야 한다며 첨예한
대립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동해 명칭이 국제적으로 통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리측 이유는 이 수역이 한국만이 아니라
주변 4개국의 영해와 EEZ(배타적 경제수역)로 구성돼있어 각 국의 관할권과 해양주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 수역으로부터 실리적, 정치적 이익을 관철하려는 일본에 대한 우리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동해라는 명칭을
통해 확실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바다인 동해가 어떤 연유에서 언제부터 일본해로 불리게 됐는지 알고 있는
독자는 많지 않다. 바다 이름은 어떤 형식과 루트를 따라 결정되는 것일까?
바다 지명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방법과 형식을 따라 결정되어 왔다. 그것은 대개 바다가 속한 대륙/국가로부터 이름을 따오거나, 최초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거나, 바다 색상이나 성분을 표현하거나, 현지 주민들이 역사적으로 사용해온 명칭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등 다양한 명칭 제정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양으로부터 분리된 해역의 이름을'Andaman Sea' (안다만 해). 'Irish Sea' (아일랜드 해), 'Gulf of California' (캘리포니아 만)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경우에서 보듯이 '일본해'라는 명칭도 대양과
구분되는 열도의 이름을 붙이는 규칙에 의존해온 것이므로 일본은 이 명칭이 계속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태평양이 알래스카의 알루시안열도(Aleutian
Islands)에 의해 분리되어 있는 바다는 '알루시안해'가
아닌 탐험가 베링의 이름을 따 '베링해' (Bering Sea)로
불리며, 마찬가지로 태평양이 쿠릴열도에 나뉜 바다는 '쿠릴해'가 아니라 인근 러시아 도시 지명을 따 '오호츠크해' (Sea of Okhotsk)로 불리며, 대서양이 영국에 의해 나뉜
바다는 '영국해'가 아니라 이 바다가 유럽의 북쪽에 위치해있다고
해서 '북해' (North Sea) 등으로 불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동해' 명칭은 우리민족이 유사 이래 지난 2천년 간 계속 사용해오며 고유명사로
정착된 역사적 명칭으로서 한국인에게는 어느 경우에도 이 바다가 '일본해'일 수 없다.
삼국사기에는 동해라는 이름이 기원전 37년부터 쓰여진 것으로 기록돼 있고, 주후 414년 중국 동북부 지역에 세워진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에도 '동해'라는 명칭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동해'는 8세기부터 쓰여진 '일본'이라는 국가 명칭보다도 무려 7세기나 앞서 쓰여진 명칭인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해'는
조선 말 우리가 쇄국정책을 쓰는 동안 일본이 먼저 개방의 길을 걸으면서 서양과의 교류가 빈번해지자 1800년부터
일부 서양인들이 '일본해'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효시가 돼
급기야 일본 내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일본해'로 불리기
전 이 바다는 역사적으로 '동해'. '조선해', '한국해'. '동양해'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려왔다.
우리민족에게는 줄곧 '동해'였던 이 바다가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로 통용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1929년 발간된, 전 세계 바다 명칭을 결정하는 권위 있는 지도책 <해양과 바다의
경계> (Limits of Oceans and Seas No.23)에 당시 일본제국의 요청으로 '동해'가 '일본해'로 단독 표기되면서부터이다.
그 뒤90년이 넘도록 '동해'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로 통용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역명칭은 제국주의가 만연한 1921년
최초로 출범한 '국제수로회의' (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IHB)에 의해 결정된 것인 만큼 제국주의가 종식된 후 발행된1953년 제3차 개정판에는 우리 입장이 반영돼야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7년에야 이 기구에 가입했었고, 1962년에 이르러서야
우리 대표를 공식 파견할 수 있게 돼, 1953년 개정판 당시에도 우리의 동해 명칭을 여전히 관철시킬
수 없었다.
현재에도 전세게 해역의 명칭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해양과
바다' 3판의 것을 여전히 따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동해 해역이 일본해 명칭 사용에 항상 전전긍긍하면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한국에 기회가
온 것은 1992년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는 1949년 1월 최초의 유엔가입 신청이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된
이래 43년만인 1991년에 북한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남북한 유엔가입 시대를 열었고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1992년 8월24일, 공식적인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고, 1990년의 한·러 수교에 이어 1992년
거의 모든 동구권 국가와 공식 수교관계를 이루어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었음을 전세계에 알렸다.
게다가 1992년 12월19일
예정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승리가 예상돼 군사정권의 종식도 눈 앞에
다가온 때였으므로 정치외교적으로는 국운이 충일한 호기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1992년 7월, 한국정부는
당시 외교부, 교통부, 문화부, 교육부, 그리고 공보처 등의 관계부처회의에서 동해의 영어명칭을 'East Sea'로 표기하기로 결정하고 학자와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거쳐 이를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에 통보하고 시정해 주도록 공식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와는 위상이 달라진 한국정부의 강경한 동해표기 문제제기의 결과 국제사회는 비로서 한일간의
바다명칭을 둘러싼 분쟁이 심각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지명표준화 문제를 주로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개의 국제기구인 '국제수로기구' (IHO)와 '유엔지명표준화위원회' (UN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가 과거의 일본 편향 태도를 벗어나 한·일 양국간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소할 것을 요청해온 것은 당시 우리 외교가 거둔 의미 있는 성과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