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한 달 전 중국에서 한 여성이 해산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의사를
향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의사는 가족들이 반대해서 제왕절개를 할 수
없으니 조금만 더 참고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자고 설득했다. 그런데 고통을 참기 힘들었는지 그 여성은
그만 5층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뛰어 내려 자살하고 말았다. 태중의
아이도 그 충격으로 죽고 말았다.
호주 의사 엘리스 해먼드는 2007년 임신 22주째에
림프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뱃속 아기를 해칠까 봐 저단위 화학요법만 세 차례 받았다. 그래서 병세가 급속히 나빠졌지만 치료를 출산 후로 미뤘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행복의 눈물을 흘린 지 3주 만에 세상을 떴다.
영국
주부 로레인 앨러드는 2007년 임신 넉 달 때 간암에 걸렸다. 그녀는
태아를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한 끝에 아들을 낳았고 두 달 뒤 숨졌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오늘 우리들의 간장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너무나도 충격이 크고 또한
진한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처럼 극명하게 대조적인 이야기가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되는 걸까? 아마도 생명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그 얼마나 열렬하게 느꼈으면 자신의 하나뿐인 고귀한 생명도 포기할 수가 있었을까?
유대 금언집에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고 했다. 참으로 신의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 때 무너진 집 잔해를 몸으로 막고 웅크린 채 숨진 여인의
품에서 아기가 숨쉬고 있었다. 아기 포대기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떠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보배야. 살아남으면 꼭 기억해다오. 내가 널 사랑했다고.”바로 이것이 생명을 사랑한 한 어머니의 신적인
사랑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는 다 이 같은 사랑으로 지금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같은 고귀한 생명을 진정으로 고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특히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 43~46명이
자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가운데 불명예스럽게도 자살률1위란다.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고, 연인에게서
그만 사귀자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자살하고, 사업에 실패하였다고 자살하고,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자살하고, 심지어는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다고
자살한다.
한결같이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요 어떻게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우리들을 낳고 길러주셨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통달하고 세상의 돈을 다 긁어 모았다고 해도 생명의 소중함 하나 모른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어리석은 인생일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생명을 전수해 주시기 위해 고귀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버리셨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와 같은 생명을 소중하게 인식하면서부터 출발한다. 이렇듯 생명의 소중함을 알 때 효자가 될 수 있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려면 하나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 속에 사랑이 없으면 결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믿음도 귀하고 소망도 귀하지만 사랑이 최고인 것이다. 이
사랑만이 우리들의 생명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세에는
이 사랑이 메말라 간다고 하였다.
오늘날 참으로 시애틀의 여름 날씨만큼이나 우리들의 마음이 건조해가고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살리려는 가슴 따뜻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식만이라도 늙어가는 부모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해 주어야 하겠는데 그것마저도 욕심으로 치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포기한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여야 하겠다.
뉴질랜드에서 이름난 마오리족 변호사 졸렌 투이라베는 아기를 살리는 선택을 했다. 원주민 마오리족을 대변해온 그녀는 2009년 임신 직후 유방암이
재발됐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살려면 당장 낙태하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둘 다 거부했다.
투이라베는 암세포가 퍼져가는 고통을 참고
또 참은 끝에 이듬해 4월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숨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아기와 보낸 두 달이
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기였다”고 했다. 투이라베는
그녀의 그렇게도 소중한 목숨을 ‘엄마 된 행복’과 바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