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하루는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강의를 하러 가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위로 작은 배는 그림을 그리듯 물살을 가르며 조용히 나아가고 있었다.
무료해진 소크라테스는
사공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시게 그대는 철학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런데
그 사공은 희끗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런 말도 않고 유유히 노만 젓고 있었다. 계면쩍 어진 소크라테스는
다시 넋을 놓고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사공은 배를 기우뚱하여 멍하게 앉아 있던 소크라테스를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물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사공은 마침내 소크라테스를 건져 올려 주었다.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수영도 하나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철학은 무슨 개똥철학이야!” 하고
말이다.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문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모양이 되어 제자들 앞에 선 소크라테스는 제자들
앞에 나아가 외쳤다. “너 자신을 알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자신은 열 가지 허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웃의 한 가지 허물조차도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색의
계절 가을이다. 멀리 너무 고상한 것을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그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고 감동을 주는 그런 자아로 변화시켜
보는 그런 사색이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인간세편’의
취지에 입각한 글들을 많이 모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한
편의 이야기가 있다. 장주(莊周)라는 사람이 밤나무 밑 울타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예사롭게 생기지
않은 한 마리의 새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의 너비는7척이나 되고 눈의 크기는 그 직경이 한 치나 되어 보였는데 그 새는 장주의 이마를 스치고 날아가더니 밤나무 숲에 앉았다. 장주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이것은 어찌된 새인가. 날개가 큰대도 제대로 날 줄을 모르고 눈이 크면서도 아무 것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장주는 바지자락을 걷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새를 잡는 화살을 들고서 새를 엿보았다. 가만히 보니 그 나무의 시원한 곳에서 매미 한 마리가 자기 몸도 잊은 채 울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사마귀가 잎사귀에 몸을 숨기고서 그 매미를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 본 그 이상하게 생긴 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처럼 눈앞의 이익에 혹하여 장주가 자기를
잡으려고 활을 들고 겨누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장주는 몸서리를 치면서 중얼거렸다. “야, 생물들은 서로 해치고 있고 이해(利害)는 서로 상대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주는 활을 거두고 돌아서서
밤나무 숲길을 빠져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밤나무 주인이 소리소리 지르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남의 밤을 왜 훔쳐 가느냐는 것이었다. 장주는 새를 잡으려는 데
정신이 팔려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장주는 집으로 들어간 후 사흘이나 두문불출한
채 불편한 심기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스승 장주의 모습을 본 제자 인저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왜 그렇게도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하고 말이다. 제자의 질문에 장주가 대답하였다.
“외부의 사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산보를 하다가 자신을 망각한 탓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할 밤나무
밭에 들어가 나 자신을 상실한 탓으로 주인으로부터 모욕을 받았다.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 말이다.
이
우화는 오늘 우리들의 삶이 어떠하여야 하겠는지에 대한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자신을 망각한 모든 것들은
결국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자칫 목숨까지도 잃는 까닭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제 자신이나 제 가정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는 이가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제 유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가장 소중한 자신을 망각하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 이렇게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신을 생각하는 계절이 올 해의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