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국경을
허문 편지 두통(상)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군과 독일군이 공중전을 하다가 영국 전투기가 독일 전투기 한 대를 격추시겼습니다. 그 전투기를 격추시킨 영국 공군 장교가 착륙하여 추락한 독일 전투기에 접근해보니 전투기는 완파되었고 독일 공군 장교는 피를 흘린채
죽어 있었습니다.
영국
장교는 야릇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죽은 독일 장교에게서 어떤 비밀스런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그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그 독일 장교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과 그 어머니가 보낸 편지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진 뒷면에는 ‘어머니의 사랑 속에’라고 적혀 있었고 편지 내용은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구구절절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영국 장교는 그 유품들을 그냥 버릴 수가 없어 주머니에 간직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영국 장교는 자신이 격추시킨 전투기에서 죽어간 독일 장교의 생각이 늘 그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는 보관하고 있던 독일 장교의
유품인 그 편지와 사진을 자주 보면서 아들을 잃은 그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몇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와 그 독일 어머니를 일치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독일 장교의 어머니가 자꾸만
자신의 어머니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어머니없는 그가 그렇게
속삭이고 나니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 멀리 독일에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 독일 어머니에게 자신의 심정을 편지로 써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편지가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그 일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잊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강하게 밀려오는 상념이었습니다.
그는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아들과 함게 찍은 사진과 편지를 다시 보는 순간 그는 편지를 써야겠다는
강한 뜻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편지 겉봉에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독일 주소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드디어 펜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저는 영국의 공군 R 대위입니다.
제가 지난해 공군에 복무하던 중…”
그는
전쟁 중에 발생한 일들과 종전 후에도 계속 잊을 수 없었던 P대위(죽은 독일 장교)와 그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편지를 쓰게 된 심경을 자세하게 적은 후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습니다.
“….제가 차라리 P 대위의 시신이나 유품을 보지 않았더라면 P 대위와 어머니에게 이토록 심한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저지른 불가피한 일이라고는 해도 저는 죽은 P 대위와 어머니로부터 어떤 방법으로든지 속죄를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머니, 제가 속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P 대위를 대신해서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제 뜻을 어떻게 받아 들이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원한을 품으실 수도 있고,
저로 인해서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시든지 저는 일방적으로라도 어머니의 아들로 살아 가고 싶습니다. 저의 이 진심을 받아주셔서,
자격도 없는 이 몸이지만 P 대위 대신 아들로 맞아 주신다면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하고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어머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달려가 어머님을 뵙고 싶습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바라오며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어머님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다음 칼럼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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