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타인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 삶의 당위성이란?”
책을 소개받으면서 ‘로기완’이 사람 이름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에도 고유한 이름을 가진 개체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데 ‘로기완’이란 이름은 나에게 지구 상의 어떤 외국어보다도 더 낯설게 다가왔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북한의 동족에 대한 존재를 이름 석 자를 놓고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이러한 불편한 죄책감은 이 책이 이끌어가는 주된 주제이다. 사실 누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단 스스로를 책망하는 자책에 가깝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이 겪는 자책감의 무게는 단순히 불편한 정도를 넘어 한 인간의 살고 죽음을 사이에 두고 묵직하게 그들을 짓누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두고 일말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워'
사랑하는 사람의 어쩔 수 없었던 죽음을 두고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녹아 있다.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 사는 삶의 당위성은 무엇이고 어떤 모습으로 속죄와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답해보라고 채근한다.
소설은 주인공 김 작가를 중심으로 박가와 로기완의 이야기를 오가며 펼쳐진다. 세 사람이 당면해야 한 삶의 무게를 헤아려보자.
'어떤 죽음과 연관된 3명이 당면한 삶의 무게 다뤄'
김 작가는 세상의 어두운 곳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송작가이다.
자신이 맡은 다큐멘터리의 출연자인 소녀 윤주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가족도 없이 홀로 질병을 안고 살아간다. 윤주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던 김 작가는 방송 스케줄 때문에 윤주의 수술을 석 달간 미루기로 하는데 하필이면 미뤄진 그 기간에 윤주의 종양은 악성으로 바뀌게 되는 운명과 대면하게 된다.
윤주에게 갑자기 찾아 든 암 선고는 자신 때문에 빚어진 불행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타인이 죽음이라는 최악의 불행을 맞이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김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벨기에 브뤼셀로 떠난다.
브뤼셀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박가는 간암 말기로 고통받던 아내를 안락사로 생을 마치도록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 후 의사생활을 접고 탈북자들을 돕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어왔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되돌릴 수 없는 아내의 죽음 앞에 자꾸만 밀려드는 죄책감을 지울 길이 없다. 물론 아내의 바람이고 결정이었지만 죽은 아내를 뒤로하고 본인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박가에게는 죽음 자체만큼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탈북자 로기완은 어려서 아버지를 탄광에서 잃고 그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와 함께 중국 연길로 와서 난민의 꿈을 꾼다.
그러나 어느 날 로의 어머니는 자정 무렵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운의 교통사고로 거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야 하는 탈북자 신변 때문에 어머니의 시신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 나서지도 못한다.
홀로 갇힌 방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침묵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죄책감이 로에게 밀려왔지만, 그가 사는 길이 어머니가 사는 것의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어머니의 시신을 주고받은 돈으로 조선족 브로커 비용을 감당하고 난민의 길을 찾아 로는 브뤼셀에 마침내 도착한다.
주인공 김 작가는 우연히 로기완의 기사를 시사 주간지에서 읽고 그를 만나러 무작정 브뤼쉘로 떠난다. 김 작가가 로기완을 만나야 하는 절실함은 오직 한가지 이유에 있다.
로에게는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서 살아야 하는 처절한 사명감이 있었다. 김 작가는 로를 통해 살아남은 자의 삶에 대한 당위성을 확인하려 한다.
김 작가는 로가 지나온 그 거처를 그대로 답습해가며 자신을 로와 일치시켜 보려고 노력한다. 로가 브뤼쉘에서 묵었던 같은 호텔 방에 머물며, 로가 걸었던 이국 땅의 생소한 길을 걸으며, 로가 자주 들렀던 맥도날드 화장실에 들어가 호텔 식당에서 아침에 집어온 빵을 입으로 가져가 보기도 한다.
로가 난민의 지위를 받게 되기까지 이국 땅에서 겪은 배고픔과 이방인으로서의 받은 학대를 그대로 재현해가며 그 고통을 분담해 보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한 시도는 결국 김 작가가 윤주에게서 용서받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윤주에 대한 속죄의 길이고 그래야만 본인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절박함을 몸으로 느낀다.
브뤼쉘에서 로의 난민을 도왔던 박가와 김 작가는 만나게 된다. 로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김 작가와 박가는 서로가 가진 아픔의 실체 또한 만나게 된다.
김 작가가 아내를 안락사로 보낸 후 사뭇 불편함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박가의 고뇌를 단번에 알아차린 것은 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계에 부딪힌 인간이 할 수 있는 서로 보듬어 주는 일뿐'
한계에 부딪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보듬어 주는 일뿐이었다.
김 작가가 박가의 마음을 이해해 주며 그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포옹해 주는 그 순간 박가의 마음엔 힐링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유난히 아내를 닮은 김 작가의 위로를 받으며 마치 죽은 아내로부터 용서를 받듯 마음의 상처에서 서서히 놓여나기 시작한다.
동시에 김 작가도 행복하게 사는 로의 삶을 바라보면서 살아남은 자의 삶의 의미를 찾고 정당성을 확인받게 된다. 계속 살아갈 힘을 로를 통해 얻게 된다. 살아 남았고 현재 살아있는 로를 만남으로 인해 김 작가 자신의 힐링도 시작이 된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답은 없다. 이미 저 세상에 가 있는 아내를 위해 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로가 어머니의 죽음을 대신해서 갚아줄 수 있는 것도 없다. 난민으로 학대받고 배고픔에 시달린다고 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고, 김 작가가 로처럼 자신의 속죄를 위해 아픔의 전철을 밟아가며 재현해본다 한들 윤주를 죽음에서 구원할 길은 절대로 없다.
죽음을 사이에 두고는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구원과 속죄의 길은 없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숨 쉬고 있기에 서로를 위한 힐링을 그렇다고 멈출 수야 없다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도서관에서 이
책의 작가인 조해진씨를 모시고 북소리 강연을 오는 11월 9일에 마련합니다.
많이 참석해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