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담임)
콩나물에 물을 주는 신앙관
‘종교학의 벌레’라고 불리는 리차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책임
문화 공동체”를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죄인된 나와 너의 존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함을 받고 신앙 공동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신앙 생활 가운데 책임문화 공동체를 이루는
목적은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것이다.
기원후 약30년경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 기간에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중 성령의 권능을 받고 불의 혀가 갈라지며 방언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체험을 한다.
그
후 초대교회 공동체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르지 기도하기를 힘써…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초대교회 공동체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으로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섬김의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속히 재림할 것이라는 신앙관이 책임공동체를 이루는데 바탕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 가운데 이러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이 점점 약화되어가고 동시에 기독교인의 수는 더욱 더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문화 가운데 책임 공동체가 희미해지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기독교인들은 성도들간에 진정한 신앙의 교제를 원치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초대를 받는 것은 좋지만 타인을 초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둘째, 다른 성도들과 교제가운데 자신의 약한 모습과 단점들이 보여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셋째, 교회 안에서 직분에 관한 것만 관심을 갖지 각기 부서에 필요한 곳에 소속이 되어 섬김의
사역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넷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가지는데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는 비즈니스식
관계형성에 초점을 둔다.
다섯째, 하나님과 관계형성을 통한 영적인 체험의 부족과 다른 성도들과 함께 관계 형성을 하는
것에 대해 피곤해 한다.
이것은 책임 공동체에서 이익 공동체와 이기주의 신앙관으로 바꾸어 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공동체는 모이는 것을 점점 폐하게 된다. 그리고
각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문화에 대한 소중함만 주장하지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는 무시하고 정죄한다.
이러한
이기주의 문화의 팽배로 인해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신앙 공동체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너무나 큰 벽으로
느껴 쉽게 영적인 교제를 나누지 못한다.
현대 기독교가 책임 공동체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신앙인들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히브리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현대인의 기독교 공동체 가운데서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콩나물 시루’에
콩이 자라도록 콩나물을 보는 사람들이 오가면서 계속적으로 물을 주는 것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게 되면 물은 즉시 콩나물 시루 아래 구멍을 통해 다라에 물이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물을 부어 주면 알게 모르게 콩나물은 쑥쑥 자라게 된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것은 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볼 때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서 책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낯선 자와 영적인 관계 형성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성도들은 교회 안에 모이기를 힘쓰고 구제를 성심으로 하고 기도하기를 즐겨 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낯선 자를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베풀며 책임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면 현대인의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초대교회가 이룬 교회성장을 맞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