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 중앙교회 담임)
결혼 10주년, 기부금
1,000달러
잔칫집에 들어선 분위기였습니다. 정장차림의 백인 신사, 숙녀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행사 진행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전면 좌우 양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돌을 막 넘긴듯한 아기들의 재롱이
클로즈업되고 있었습니다. 한 여아는 심한 언청이였지만 표정은 천사처럼 밝았습니다. 홀트 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일산의 장애 아동시설 같았습니다.
홀트 아동복지센터를 후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유진 본부의
모금 행사였습니다.
8명씩 둘러 앉은 테이블의 숫자를 보면 참석자들이 200명은 족히 될 것 같았습니다. 유일하게 한인들만 앉은 우리 테이블에는
송윤희씨 내외, 유진에서 사역하는 이웃교회 고유곤 목사님 내외, 평생을
고아들의 복지사역을 위해 남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몽고
등에 설립한 고아원을 방문하여 돌보는 데이빗 임 목사님, 그리고 우리 부부가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말쑥한 차림의 청년 네댓 명이 유리 항아리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고 이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참석자들은 마치 식당에서 웨이트리스에게 기분 좋게 팁을 주듯이 가벼운
눈 웃음과 함께 돈을 항아리에 넣었습니다.
오늘 모금의 입찰메뉴는 다양했습니다. 시내 식당들의 식권, 각종 선물권,
여행 티켓 등 모두 홀트 복지회에 기부된 것들이었습니다.
사회 겸 경매 진행자로 자원한
그람 크로우씨는 입담 좋게 상품을 팔았습니다. 두 사람이 몽고 여행을 즐길 수 있는 4,000달러 가치의 티켓, 아름답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할 수 있는 버스여행 티켓, 네 사람이 도미니카공화국을 한 주간 여행할 수 있는 1,500달러
상당의 티켓 등이 있었지만 하이라이트는 이탈리아 여행 상품이었습니다.
경매를 진행한 크로우씨는 처음에는 아주 낮은 가격부터 출발했지만
여려 테이블의 경쟁자들을 뚫고 최종 매수자의 손에 들어갈 때는 대부분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그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습니다. 아쉽게 상품을 놓치면 놓친 대로 즐거워했고 최고의 값을 지불하고
산 사람은 더욱 큰 환희의 박수를 치곤 했습니다.
매수자가 자신들의 테이블에서 나왔다는 흐뭇함과 선한
일을 위해 기쁘게 기부했다는 성취감이 모든 참석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디저트용 케이크도
경매 리스트에 스무 개 남짓 올라 있었지만 경쟁이나 하듯이 금방 다 팔려 나갔습니다.
해리 홀트씨는 한국에1955년 도착했습니다. 6.25사변이 끝난 직후라 서울은 폐허의 도시 그 자체였습니다. 전국에 버려진 고아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홀트씨는 고아들을 모아
보살피기 위해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스마트하고 신앙 좋은 김형복 청년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홀트씨를 옆에서 도와 홀트 아동복지회를 창립했고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홀트씨가 교통사고로 서울 근교에서 목숨을 잃은 후에도 김형복 장로님은 홀트씨 부인과 함께 수 많은 고아 입양을
계속하시다가 지난 1월25일 이곳 유진에서 87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까지도 낸시
김 여사는 남편 김 장로님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하셨습니다. 오늘 김 여사님은 아들과 함께 조용히 참관하고
있었습니다.
“김형복
장로님의 삶을 잊지 않고 사역에 동참하는 의미로 100달러 기부금을 받습니다. 참가하실 분들은 입찰번호를 높이 들어주세요.” 테이블마다 여러 사람들이
입찰 번호를 높이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크로우씨가 마이크를 다시 잡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결혼 10주년을
맞은 수잔씨 부부께서 제안하셨습니다. 여러분이 1,000달러를
기부하시면 수잔씨 부부가 1,000달러를 매치해 기부하시겠다고 합니다.
희망자는 손을 들어 주세요!”
사람들 시선이 수잔씨에게 집중했습니다. “결혼을 축하합니다!” 이곳 저곳에서 축하 인사가 들렸습니다. 금방 1,000달러가 모아졌습니다.
수잔씨는 입양 초창기에 한국에서 미국 가정으로 입양돼 후배 입양아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자리를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홀트 복지회에 모금된 금액은 5만2,515달러입니다. 감사합니다!”
크로우씨의 마지막 코멘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