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
수필가
꿈꾸세요?
백화점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그 물결 속에서 나도 서성이고 있다.
“저걸
사?”
마침
옷 하나에 눈이 꽂혔다. 다가가 덥석 손에 쥐기는 했는데 선뜻 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다. 그리 값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머릿속 계산이 저리 복잡할까. 갑갑증이 인다.
“얼른
사!”
내
고함소리에 놀라 그만 잠이 깼다. 꿈이었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나마 좀 시원시원하게 살지. 꿈이란 무의식 세계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억눌린 행동의 표현이라고
하더니 참말이다. 그런 나를 보는 게 화난다.
어머니는
집안 일이 끝나면 말끔하게 세수를 하고 밑 화장을 한 뒤 깔끔한 옷으로 갈아 입으셨다. 외출할 거냐고 물으면 아니란다.
어머니의
지론은, “내가
죽고 난 뒤 너희들 꿈에 늘 집안 일만 하는 구질구질한 모습만 나타날까 봐.”이었다.
별
걱정이라며 픽 웃었는데 어젯밤의 꿈을 꾸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때때로 선물을 사야 할 때 나는 무척 곤혹스럽다. 목록 정하기가 버거운 때문이다. 하기야 무슨 일에나 경험이 필요한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쇼핑(eye shopping)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이쇼핑을 할 때마다 은근슬쩍 고개를 쳐드는 견물생심이 문제다. 백화점 카드로 저지르고 나면 해결할 방도가 생긴다고 하지만 그래도 빚이다.
그런 빚이 싫으니 별 수 없다.
품격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실력이 필요하고, 수준을 가릴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제 몸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세상이 그런가. 장식품 하나쯤으로 덧붙여진
품격은 명품 갖추기로 변질됐다. 게다가 그 명품에까지 순위가 매겨져 있다니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황새 따라가는 뱁새가 다리 찢기는 일 외에 무엇이 있으랴.
결국
내 나름의 삶에 대한 정의를 세웠다.
이왕 품격과 거리를 둘 양이면 차라리 편안하고 싶다고. 보이기 위한 품격일랑은 싹둑
잘라내는 자유로움 말이다.
꿈에
나타난 내 꼴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혹 부족한 내 자신감을 탓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매사에 어영부영 지내는 내 꼴을
보는 것 같아 초라하다. 이쯤 되면 세상을 사는 답은 두 가지다. 지혜를
갖거나 배짱이 있거나. 그런데 지혜를 갖자니 세상이 너무 넓고, 배짱을
갖자니 타고난 배포가 작다.
남편과
나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 남편의 성격은 태생적으로 낙천적이다. 남편은 늘 100% 성공을 장담한다. 반대로 나는 비관적이다. 10% 실패만
보여도 행동으로 옮기기를 꺼린다.
둘은 늘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결과를
보면 남편의 성공률 100%가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내10%의 실패에 발목 잡힐 것까지도 없었다. 결국 문제는 예측이 아니라 실천이다.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얼마
전에 식탁 하나를 샀다. 몇 번이나 가게를 드나들면서 요모조모 살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보다 못해 남편이 나섰다.
결정은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막상 집에 들여놓고 나니 또 마음에 걸렸다.
이래저래 투덜대자 남편이 말했다.
“변하는
당신 마음이 문제지.”
요즘
내 마음에도 변화가 인다. 머뭇거림에 낭비했던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은 것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이쯤 살고 나니 중요한 만사도 마음 먹기다. 남은 시간들이 많지 않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읽지 않은 책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그리하여 덤으로 얻는 소망이 있다면,
딸의 꿈에 나타나는 제 어미의 모습은 온유하면서 조용한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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