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김치가
주는 행복
K권사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사람들의
힘든 사정은 아랑곳없이 태양의 계절은 지나가고 무르익던 가을도 가고 있습니다. 한들거리며 아름다움을
과시하던 황금빛 잎들도 떨어지고 있어요. 권사님 댁 뒷마당의 튼실한 사과나무에도 주렁주렁 빨갛게 반짝이던
사과도 자취를 감추었겠네요.
저희는
집에 있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게으름만 늘지 않을까 근심하며 사는 요즈음 권사님이 주신 김치가 큰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맛깔스러운 김치를 이번에도 염치없이 세 병씩이나 받았으니. 삼시
세끼 식탁을 대할 때마다 황송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배추 물김치는 마음속까지 시원히 뚫어주고, 깊은 맛이 고루 밴 썬 김치는 밥상 한가운데서 젓가락을 부지런하게 한답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져 배추 결마다 싱싱함이 향긋하게 살아나는 겉절이… 더 이상일 수 없이
맛있는 김치를 수고없이 먹는 저희는 얼마나 복이 많은지요.
권사님, 따님들이 혹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안문자가 누구예요? 어머니는 왜 이 사람에게 자꾸 김치를 해주세요? 힘드실 텐데.’하고요. 지난 번엔 따님이 무거운 김치를 들고 층층대 밑에까지 옮겨준
일이 있었지요. 전문직의 유능한 따님이라고 들었는데 권사님을 닮아 사랑이 많고 착한가 봐요.
김치를 건네받으며 미안하고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게 권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옛날에 안 작가의 아버지, 안 목사님과 사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 그거 갚는 거야. 안 작가가 글은 잘 쓰지만 김치를 잘 못하잖아. 하하하.’라고요. 변변찮은
저를 꼭 안 작가라고 불러주시면서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베푸신 사랑의 열매를 우리가 지금도 받아먹는구나 싶어 그리움이 왈칵 솟기도 했습니다. 한편, 저는 어떤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열매를 남겨주는가 생각하며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루는
저녁을 일찍 먹었는데 10시쯤 되니까 출출해졌어요. 갑자기
김치가 떠올랐고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어졌지요. 그렇지, 연속극에서
양푼에 김치와 밥을 넣고 비벼서 여럿이 막 퍼먹던데 맛있게 보였어요. 남편보고 말했어요. 우리도 맛있는 김치로 그렇게 한번 먹어보자고. 남편은 허허허, 웃었어요. 양푼을 챙겨와 김치와 밥을, 그리고 참기름을 넣었지요.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숟가락에
김치비빔밥을 잔뜩 얹어 입에 넣고 아작거리며 행복한 밤참을 먹었답니다. 맛이요? 와, 세상에! 정말 별미였다니까요. 양푼이나 참기름 때문이 아니고요, 권사님의 사랑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의
김치 때문에 행복한 때에 책 선물이 배달되었어요. 신기하게도 김치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최홍식 박사 지음 *<김치 100그램의 행복>이라는 책이랍니다. 단숨에 읽었어요. 이미 알려진 대로 세계의 석학들이 선정하여 미국의
건강전문지인 <건강: Health>이란 잡지에
한국의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 중의 하나로 선정했데요. 그 때문에 김치는 마음과 몸을 치유하며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힐빙(heal-being)식품'이라고 세계적으로 소문이 났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네요.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힐링'(healing; 치유)이라고 한다고요. 식품과학자인 최홍식 박사의 연구로 한국의 대표적 발효음식 김치의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이지요.
그런 소문이 퍼져 요즘은 코스코나 이웃의 미국식품점 냉장 진열장에서도 김치(KIMCHI)를
쉽게 볼 수 있게 됐어요. 반갑고 신기해서 몇 번 사 먹어봤지만, 권사님의
김치 솜씨에 빠져버린 저희에겐 성에 차지 않는 맛이었어요.
권사님께서는 ‘이 나이가 되도록 건강을 주셔서 김치를 만들어 이웃에게 줄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라고 하시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셨지요. "하늘에게
행복을 달라 했더니 감사를 배우라 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권사님께서는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계십니다.
김치와 함께 선물로 주신 찻잔, 저와 남편을 지정해 이름까지 붙여 주신 자상한 배려에 감동되었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잃어버린 일상을 찾게 되면 제일 먼저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부디 건강 조심하세요.
* <김치 100그램의 행복>의 뜻은 짜지 않은 김치를 하루에 100그램 이상 먹어야 바람직. (작은 달걀 한 개의 무게는 50그램. 한 끼에 달걀 한 개 만큼)
*힐빙(heal-being: 치유룰 통한 건강한 삶이란 뜻)은 힐링과 웰빙(well-being: 복지, 행복)을
합친 신조어. -<김치 100그램의 행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