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식 駐코스타리카 대사
<시애틀총영사관을 거쳐 현재 駐코스타리카 대사로 근무하고 있는 윤찬식 대사가 한국 내일신문에 기고한 글을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편집자註>
군대폐지 70년 코스타리카의 평화사랑
1948년 12월 1일,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는 망치소리가 요란했다. 군사령부(Cuartel Bellevista) 건물을 허무는 의식과 함께 군대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이 포고된 것이다.
이어 1949년 헌법에 군대폐지를 명문화하였고, 군건물은 교육부 소속 국립박물관으로 변모되었다. 무기를 녹여 학교를 지은 셈. 그들은 평화의 씨앗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최대의 국방이고, 진정한 평화는 일상·의식·문화 속의 군사주의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가치를 만들었다. 이를 반영하여 헌법은 GDP의 8%를 교육예산으로 배정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금년은 코스타리카 군대폐지 70주년으로 역사성과 상징성이 짙은 해이다.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니체의 철학적 망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통일 망치와 더불어 군대폐지는 인류사를 흔든 평화의 망치라고나 할까. 주인공은 돈 페페(Don Pepe), 즉 코스타리카 현대 민주주의의 설계자라 불리우는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Jose Figueres Ferrer) 대통령이다.
1948년 코스타리카 대선 직후 선거결과 불복 등 정파간 갈등이 발생하고, 급기야 내전으로 치달아 약 5주간 3천여명이 사망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산당, 국민해방군 등 내전 핵심 인사들은 대화를 통한 갈등해결을 모색하여 이른바 오초모고(Ochomogo) 협약에 합의하여 내전을 종식시켰고 최종적으로 국민해방군을 이끈 피게레스가 정치적으로 승리한다.
그는 18개월간 과도정부 수반을 역임하며 군대폐지, 아프리카계 시민권 부여 등 국가개혁을 제도화한 후 대통령직을 물려주었다(피게레스는 이후 대통령에 2회 더 당선된다). 군대폐지 이유는 쿠데타 추방과 국민희생 가능성 봉쇄, 사회 복지강화 등이었다. 이 평화 바이러스는 이웃나라까지 전염시켜 파나마도 나중에 군대를 폐지한다.
냉전시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와 콘트라 반군 대결, 미국의 개입 등 복잡한 갈등구도에서 코스타리카는 끝까지 비무장을 지켰다. 중미국가간 분쟁해결 공로로 8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스카르 아리아스(Oscar Arias) 대통령은 당시 미국 의회에서 군대없는 코스타리카에게는 적이 없으며, 이 점이 가장 강력한 평화의 힘이라고 역설하였다.
오늘날, 무기 대신 노트북과 바이올린을 들어 올리자는 내용의 코흘리개들의 노래(Canto)와 48년 정신(Espiritu del 48) 계승 등의 평화상속 행사는 일상이 되었다. 코스타리카에는 아들을 낳을 때 군인이 될 일이 없을 거라는 축복을 받았다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이다.
필자가 어느 모임에서 한국이 혁신으로 무장된 나라라는 표현을 썼더니 바로 돌아오는 말, "코스타리카는 '무장'이란 단어를 싫어합니다"하여 모두 웃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구한말 19세기 말엽에 코스타리카는 헌법으로 사형제를 폐지하고, 이후 유엔인권고등대표 창설 주도, 미주인권법원, 유엔평화대학 등을 보유한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적 이미지를 닦았다.
빈곤율도 있지만 행복지수에서 세계 1위를 3회 차지한 코스타리카는 깨끗한 삶을 의미하는 '뿌라 비다'(Pura vida)의 나라로 불리운다. 평화에 젖어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은유일 터이다.
외교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처절한 예술로서 최선을 추구하되 최악을 피해야 하는 영역이다. 한반도가 코스타리카와는 안보환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평화를 수출하는 코스타리카의 메시지는 읽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평화가 국방이자 경제이니 만큼 우리의 의지, 기획, 노력으로 항구적 평화, 구조적 평화, 불가역적 평화를 담금질해 나가야 한다. 호르헤 데브라보(Jorge Debravo) 코스타리카 시인의 노래대로 언젠가 남과 북 사이에는 "함께 나눠 마시는 맑은 공기만이 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