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홍(교육전문가)
의도적 불순종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색출하고, 수용소로 이송하여, 대량 학살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관리와 직원이
동원됐다. 그 일에 참여한 관리와 직원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악행을 저지르는 괴물의 모습이 얼굴에 나타난 것도 아니요, 딱히 유대인을 향해 남다른 적개심도
없었다. 온종일 근무하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음악을 즐기는 한 가정의 가장들이었다.
특히 히틀러의 마지막 명령에 따라 대량학살을 실행한 14명 참모들
가운데 8명은 유럽의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들이었다.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행할 뿐, 윗사람의 명령에 복종할 뿐, 자신이
거느리는 부하 직원들이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류에 서명할 뿐, 자신이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대량 학살의 악행은 “이래도 되나”라는 의구심없이
진행됐다.
이렇듯 윗사람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전쟁터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애꿎은 민간인을 사살하게 만들고, 정치인들로 하여금
국민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게 만들고, 기업의 직원들로 하여금 인체와 환경에 해로운 제품을 생산하게
만든다.
조직이나 회사에서 규율 혹은 관습에
따라 다른 구성원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행동이다. 주어진
직무에 대해 별다른 이의없이 기존 관행을 따르는 것이다.
만일 연주홀에서 갑자기 일어나 혼자
떠들거나, 조용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골프장에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나와 게임을 하는 등 규범이나 기준을 깨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한다. 모든 문서를 손으로 작성했던 시절인 1853년
뉴욕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사무실에 바틀비라는 필경사가 고용된다. 빨리빨리 정신과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아무리 많은 일을 주어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바틀비를 보며 고용주는 만족했다.
그런데 근무한지 3일째 되는 날부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처럼 일을 맡기자 바틀비가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며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하기 싫다”라는 부정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라는 긍정적인 언어유희를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틀비의 거절은 늘어갔다.
심지어는 “당신을 해고하니 사무실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도 거부하고 무작정 사무실에
머물렀다. 바틀비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알아내려고 식사에 초대를 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나중에 바틀비가 방랑죄로 체포되어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고용주는 그를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간수에게 청탁해놓았다”라고 말했다. 그런 마지막 배려마저 바틀비는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거절한 후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 죽었다.
바틀비는 불순종을 통해 자신만의 절대적 자유를
찾았다. 만일 “대충 둘러보고 모두 양호함이라고 기록하면
된다”라는 상사의 지시, 또는“적당히 봐주고 넘어가라”라는 상부의 명령을 향해“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버티는 직원이 있었더라면 세월호는
지금 어디 있을까.
단순히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에서 멈춘다면 감옥에서 굶어 죽은 바틀비처럼 사회적
자살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틀비의 의도적 불순종이“관행을
묵인하는 관행”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는 행동으로 승화될 때 새로운 질서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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