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칠
수필가
당연하다는
생각
“아니, 머리
모양이 이럴 수가…!”
현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놀란 아내 때문에 내가 더 놀랐다.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이발을 한 날이었다. 미국인이 운영하는 이발소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현재의 머리 모양대로 깎아 달라고 영어로 말한 죄밖에 없는데,
이발사는 내 머리의 옆과 뒤를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데에 딱 10분 걸렸다. 황당했다. 순간, 한국에서
편하게 머리를 깎던 일이 그리워졌다.
어렸을 때에 아버지를 따라 이발소에 가면 으레 같은 이발사가 머리를 깎아 주었다. 때로는 지루하게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다른 한가한 이발사가 깎아도
될 텐데 하고 생각했는데, 꼭 그 이발사가 깎은 것을 보면 우리가 단골손님이었나 보다. 단골이 좋은 것은 무언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단골이란
말은 언제나 따뜻한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고등학생 때에 머리를 기르면서 멋을 부리는 친구들과 행동을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랬기에 담임 선생님께서 눈감아 주시길 기대하며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르랴, 어느 날 불호령이 떨어졌다. “반장 앞으로 나와!” 나는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갔다. 바리캉이 가차없이 정수리를 지나
뒤통수까지 고속도로를 내고 말았다. 그 모양새로 지낸 하루가 1년은
되는 듯 부끄러웠지만, 두고두고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머리 모양이 사람의 이미지를 바꾼다고 한다. 군 복무
시절, 사복 근무를 한 덕분에 머리는 일반 직장인과 다름없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나는 새로 맞춘 멋진 양복을 입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 즈음 해군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진행하던 주요업무를 시찰
나오는 장성(將星)에게
안내 및 업무 보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직속상관은 당장 이발부터 하라고 했다. 대위였던 나는 소위로 임관할 때처럼 기가 바짝 설 정도로 머리를 짧게 추켜 깎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자, 그때는 아가씨였던 아내가 매우
놀라 실망한 얼굴을 했다. 머리가 짧으니 결혼식 때에 양복을 입으면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 나를 멋진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는 표현이었으니 이해할 만했다.
어쨌든 그런 사연으로 양복 대신 해군 정복을 입고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도 신부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결혼식 사진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미국 이발소에서 낭패를 본 뒤 아내는 이발소 말고 미장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싫다고 버텼다. 한 번도 안 가본 미장원을 간다는 것이 쑥스럽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는 내 전용 이발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난감했다. 진작 미장원에 간다고 할 것을, 반 고흐처럼 귀가 잘리는 건 아닐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험도
없으면서 내 머리를 접수하겠다니, 한국에서였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별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머리통을 아내에게 맡겨버렸다. 거의
한 시간 반 정도를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초보 이발사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던지 불평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횟수가 거듭되는 동안 머리를 깎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제법 솜씨가 좋아졌다.
나는 머리 숱이 유난히 많은 편이었다. 처음에는 머리를
깎아 떨어뜨리는 양이 꽤 많았다. 어느 날, 떨어지는 머리의
양이 엄청나게 줄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내 앞머리와 정수리께가 훤했다. 달라진 머리 모양새가 세월의
흐름을 실감나게 했다. 평균 수명인 여든 살까지 산다고 하면, 나의
전용 이발사는 숱이 줄어드는 내 머리를 스무 해 정도 더 깎아야 하리라.
근래에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 15년 동안 머리를
깎아 준 아내에게 이발료나 선물을 건넨 적이 있었냐고 친구가 물었다. 아내가 우러나서 남편인 내게 베푼
일이기에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본인의 경험에서 얻은 조언이라며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아내가 해주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 마음의 표시는 그때 그때 바로 해야 한다고 했다.
급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은 누구나 잘하나, 중요한
일이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미루는 게 우리들의 속성이지 싶다.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만, 급한 일이 아니고 가까운 사이라는 핑계로 은근슬쩍 넘어갔던 것은 사실이다.
요즘 내 머리 숱이 적어져 머리 깎을 때에 더 정성을 들인다는 말을 못 들은 척했는데, 이 참에 뭔가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바꾸니,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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