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공존의
미학
한국
방송국에서 제보를 받고 산사나이를 특별 취재한 내용이 방영돼 감명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산사나이는
폐가에서 혼자 살면서 겨울 내내 산으로 올라가서 땅을 파고 무엇인가를 잡아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곁에서 지켜보니 그 무엇인가는 바로 구더기였습니다. 혼자 산에서 살다 보니 영양이 부족한데 땅속에서
서식하는 구더기를 잡아먹으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사나이는 무한정
구더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다시 흙을 덮어 보존하고 내려왔습니다.
그까짓 구더기를
왜 또 보호하느냐고 물었더니 필요이상으로 취하는 것은 욕심이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데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북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해와 서해 해산물을 싹쓸이해 씨를 말리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합니다. 급기야는
생태탕을 팔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명태 씨가 말라 영원히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연은
인류의 생명 줄입니다. 하지만 자기 앞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자연을 파괴할 때 결국은 인간도 자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시애틀에
사는 우리는 지난달 때 아닌 눈으로 엄청난 재난을 당했습니다. 50년 만에 최고 한파도 몰아쳤습니다. 미국 중부에서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몰아쳤고 호주에서는
영상 50도까지 오르는 기후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미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유익만을 챙기는 사람은 인류의 적입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희생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만드는 사람이 추앙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후손들에게 없어도 나눌 줄 알고, 나의 유익보다는 이웃의 유익을 추구하며 더불어 공존하며 살아갈 줄
아는 모범을 보여야겠습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만 살고, 죽으면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톨스토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은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 속에서 살아 있지 않습니까?
한 때 세계 최고부자였던 록펠러는 부를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쓰지 않고 이웃들과 인류를 위해 헌신함으로 이
땅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멋들어진 삶을 살다 갔던 인물입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살아 있을 때에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미국에 24개
대학(존스홉킨스대, 예일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등)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으며, 4,928개 교회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죽을
때는 빈손으로 하나님께 돌아갔던 인물이었기에 그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목사는 참으로 많은 장례식을 인도하는데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고 인색하게 살다 죽은 사람의 장례식을 인도할 때가 가장 힘듭니다. 뭔가 고인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이웃과 인류를 위해 살다 떠난
분들의 장례식은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이 넘치며 소망스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이처럼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소중한 재산과 시간을 이렇게 더불어 누리며 나누는 삶을
살다 떠나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후손들이 두고두고 칭찬과 존경을 받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멋진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밖에 모르고 인색하고 어리석게 살다 떠나면 이 세상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 재산을 나누려다 자식들만
서로 싸우게 하는 가장 못난 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겨울도 지나고 봄이 찾아오는데 뭔가 훈훈한 깨달음을
가지고 소중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