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
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소우주(小宇宙)와 대우주(大宇宙)
우리
몸 안에는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있고 내 몸 밖에는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가 있다. 오장육부를 지닌 우리를 소우주(小宇宙)라 하고 지구 위에 널리 퍼져있는 오대양 육대주를 대우주(大宇宙)라 부른다.
‘우(宇)’라는 한문은 집을 뜻하고 ‘주(宙)’라는 한문도 집을 뜻하므로 이
작은 집에 해당하는 우리 몸 안에서는 항상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우리 몸 밖의 큰 집에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생로병사의
길이란 일방통행의 길이라, 한번 지나치면 그뿐이지만 춘하추동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가 되면 다시 사계절이 반복된다. 그러기에 우리 일생은 유일무이(唯一無二)의 길이라, 한번 가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한평생으로 그친다.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3가지의 원수를 만난다.
첫
번째 원수가 가난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듯 그만큼 극복하고 정복하기가 어려운 원수임이 틀림없다.
두
번째 원수는 질병이다. 현대는 옛날보다 식생활 개선과 의술 발달로 많은 질병이 퇴치되고는 있지만, 수명만 연장되었을
뿐 근본적으로 죽음을 이겨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원수도 무서운 원수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세
번째는 죽음이란 원수가 있다. 영어 ‘All are equal in the grave.(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란 말이 바로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성경에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다.(히브리서 9:27).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외나무다리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가 있지만 외나무다리이기 때문에 에누리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 죽음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라고 했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
‘사망의 죄’란 몸을 입고 출생했음을 일러준다.
이것을
시편 51:5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일러주고 있다. 이것은 100리 길도 첫걸음으로
시작하듯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내가 죄인이라는 이 전제는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마지노선(Maginot Line)과도 같다. 종교마다
제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이 없지 않지만, ‘내가 죄인이라는 전제’는 기독교의 흔들림이 없는 마지막 보루라 하겠다.
그러므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계시록 3:1)고 하는 이 깨우침을 시인할 때 내 믿음에 있어 첫걸음의 빗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가 씻음을 받아 제한된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고 또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의미한다.(고린도후서 5:17)
그러므로 지구 위에 널리 산재해 있는 72억 이란 많은 사람들 가운데 ‘Men may die.(사람은 죽는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Man never die(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한부로 제 수명만큼 살다 끝나는 일생이 그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한부 인생이 무제한 영생의 길로 바뀌게 되는 바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을 의미한다.
후자의
길에 들어선 신자를 성도(聖徒)라 한다. 성도란 뜻은 ‘구별된 무리’란 뜻이다. 이
구별된 사람들이 곧 영생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죽음은 나비가 나방이(Caterpillar)에서 변화되었듯 끝이 아니라 변화이다.
우리는
사도신조 끝에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이 고백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의 밑거름이 되어 여생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 주께서 오라 하시는 그 날을 늘 기다리며 내 등불 밝혔다가 영원한
주의 팔에 안기는 복된 그 날이 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dongchin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