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가장 복된 만남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나이에, 그리고 이곳에 이르게 된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과정이란 ‘만남의 연속’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형제를 만나기 시작해 성장기에는 친구와의 만남, 학교생활에선 스승과의 만남, 사회생활에선 직장 동료와 사업의 만남, 결혼을 통해 배우자와 만나고 다시 자녀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헌데 이 같은 만남들은 다 제한이나 한계를 전제로 하는 것들이어서 헤어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사람이든 싫은 사람이든, 적이든 친구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이익을 주는 사람이든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든, 이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긴 안목에서 보면 소중한 분들이라 그 어떤 만남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남을 너무 소홀히 여길 때가 많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듯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값있는 만남도 허다하다.
이처럼 귀한 만남은 나에게도 있었다. 1958년 대학을 졸업하고 전라도 광주에 위치한 육군 보병학교에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졸업과 함께 군종 장교(중위)로 임관해
육군 제21사단에서 근무할 때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첫 휴가를
받아 버스를 타고 춘천역으로 가고 있었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길이라 험하기로 유명한 길이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승객들이 하나같이 손잡이를 붙잡고 혹시나 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 손을 꽉 쥐고 숨죽이며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홉 살밖에 안돼 보이는 소년이 내 옆 좌석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도 이 소년은 일어나지 않고 매우 평화스러운 표정으로 잠잔 자고 있었다.
나는 소년에게 “일어나라”며 깨웠다. 그런데도 소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흔들며 “일어나라”고 호통을 쳤다. 그때서야
소년은 귀찮은 표정으로 눈을 뜬 뒤 “아저씨는 몰라서 그래요”라고 말한 뒤 “저 운전사는 바로 내 아버지”라고 내뱉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운전사인
자기 아버지의 운전 실력을 믿고 다른 승객들과 달리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버스
운전사이기에 자기는 아무런 염려가 없다는 믿음이 그 소년의 마음에 평화를 심어 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소년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운전해 가시는 참 목자가 되심을 믿으라는 깨우침을 주는 순간으로 받아들였다.
이때 ‘마음을 부수고 다시 깨닫는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란 말 그대로 큰 깨우침을 얻었다. “저 운전사는 바로 나의 아버지”라는 음성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소년을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을 얼마나 내 인생길에 운전사로 여기고 있는지 자문자답하는 계기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휴가를 가기 위해 탔던 그날 산길 버스 길은 나에게는 사도 바울의 다메섹과도 같은 곳이다.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나도 그 소년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감사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은 오게 될 이처럼 복된 만남을 소중하게 체험하길 바란다. dongchin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