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덕 목사(벨뷰 한인장로교회 담임)
어머니의 웃음
잠 23:25
어느 공익광고 내용이 기억납니다.
“밥 한 번 사준 선배에겐 ‘선배, 고마워요’. 매일 밥 차려 주신 엄마에겐 ‘물이나 줘’. 여자 친구 생일에는 꽃을 건네며 ‘축하해’, 엄마 생신에는 늦게 들어오면서 볼멘 소리 ‘어, 엄마 생일이었어?’5분
기다려준 동료에겐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준 부모에겐 ‘왜 나왔어’부모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 있나요? ‘고마워요 엄마’말 한마디가 효도입니다.” 대충 이런 내용 같습니다.
왜 그런지 저는 어머님께 효도했다는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평소 지병이었던 혈압이 원인이 되어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어머님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1년 반 누워 계시다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님과의
마지막 대화는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마치기 위해 미국에 가기 직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나는 어머님께 별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었습니다. “어머니, 아이들과 미국에
가게 되면 혹시 그동안 보내 드리던 용돈을 보내 드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선교지에서 있을 때는 적게
나마 넉넉치 않으신 부모님을 도울 수 있었는데, 만만찮은 미국 유학생활에 걱정이 앞서 이런 말씀을 드렸었지요.
그 때 어머님은 “걱정말거라. 그동안
어렵게 보내준 것 모아두었다가 은행 이자 갚는데 유용하게 잘 썼다. 달리 좋은 방법이 있겠지. 그보다 너희가 아이들과 고생이 많겠다.” 돌아 나오는 길에 어머님은
어디서 마련하셨는지 오백만원을 현금으로 마련하셔서 나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절대 사양했을
터인데 그때는 뻔뻔스럽게도 어머님께로부터 그 돈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것이 어머님과의 마지막 대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어머님은 뇌경색으로
혼수상태에 1년 반을 병상에서 지내시다가 주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님의
응급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박사 과정 첫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 부득이 미국으로 향하던 길이었고 한 달 후 귀국하여 어머님을 뵈었을 때, 이미 어머님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시는 상태였습니다.
어머님과의 마지막 대면에 자랑스럽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늘 이맘때가 되어 어머님 생각을 할 때는 늘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에 울적해집니다.
성경은 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종부(宗婦)라는 말은 아마도 어머님께는 허울 좋은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집안 살림과 사업을 일으켜 세우기에 선비 같았던 아버님은 크게 힘이 되지 못했고 모든 일의 전면에 나서야
했던 어머님께 삶은 무척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어려움을 이어가던 시기, 한 번 어머님이 아들 때문에 기뻐하셨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소위 일류고등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저는 어머님의 얼굴에서 낯선 웃음을 보았습니다.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어머님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웃으셨습니다.
축하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시끄러운 인사가 아닌, 남에게 보일까 혼자 숨어 허공에 보였던 웃음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님께서 ‘엄마’생각을
하셨을까요.
사람이 웃으면 얼굴 근육이 40개가 움직인다는데, 세상 모든 근심을 잊고, 시집와서 단 한 번 웃었을 것 같았던, 아니 철든 아들의 곁눈질에
들킨, 어머니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웃음을, 나는
혼자서 훔쳐보듯 어머님의 해맑은 웃음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되어
자녀들로 인한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는 때가 되었습니다. 자녀들로 인한 기쁨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을 때, 부모의
마음이 기쁩니다. 삶에 지쳤을 부모의 영혼에 회복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확신하건 데 그것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능력입니다. 모든 부모님들께 이 하나님의 ‘큰 선물’을 찾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