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근(전 오리건주 상원의원/민주평통 포틀랜드지회 고문)
촌놈과 주례
한 15년 전 상원의원 시절이다. 서울에 있는 Y친구가 전화가 왔다. 서울에 사는 J친구 아들이 장가간다는데 와서 주례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다.
태평양을 건너서 주례하려고 한국까지 간다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미국 내에서 주례부탁을 받는 일은 있었어도 국제적으로 결혼 주례부탁은 처음이다.
여주 고향에서 같이 자란 죽마지우 '알' 친구다. 여기에는 아무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 뻘개 벗고 시냇물과 한강에서 같이 수영하고 놀던 친구의 아들 결혼주례다. 아무 조건없이 가겠다고 약속했다.
옛날 경기도 여주에서 별볼일 없이 지내던 친구가 서울서 케미칼회사 중류급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런데도 서울에 있는 서울출신 대학 동문들이 아직도 '여주 촌놈'이라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한다.
사업적으로나 교육적으로 가정적으로 아무 꿀릴 것이 없는데 다만 '여주출신
촌놈'이라는 것 때문에 서울 동문들이 본의든 타의든 자기를 하대하고 무시하고 괄시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출신에 따라 괄시하는 한국 풍습도 문제지만 그것을 받고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더 큰 문제다.
하여간 미국의 친구 상원의원이 자기 아들 결혼주례를 해주면 자기를 괄시하던 서울출신 친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상위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속셈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나는 <MBC 성공시대>에 한 시간 prime
time에 방송되었고 한국 주요 뉴스매체에서 요란스럽게 나를 홍보했던 시절이었다.
미국의 한인으로서
유일한 상원의원, 여주농업고등학교 출신이다. 나는 여주
촌놈 출신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내 호는 '여촌'이다. '여주 촌놈'이라는 뜻이다.
하여간 한국 가서 결혼주례를 잘 해주었다.
주례사인즉 "J친구는 우리 여주 고향친구로서 자제 결혼식에 붕정만리 미국에서 날아와 상원의원으로 주례하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문을 열고 자제 결혼을 축하함은 물론 참석한 하객들 앞에서 J친구를 적절하게 위상을 띄워줬다.
그 이후 자기를
여주 촌놈이라고 부르며 괄시하던 서울 친구들의 소리는 쏙 들어가고 오히려 미국 상원의원을 친구로 둔 자기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고 J친구와 여담을 나누었다.
한 사람은 사업가, 한 사람은 미국 상원의원, 뭐 소설 같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