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전(스노호미시 한미노인회장)
노인들의 가을앓이
맑고
푸르던 시애틀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찾아온 모양이다. 며칠사이 적지 않은 비가 내렸고, 비 오는 소리만 들어도 괜스레 마음이 시려 온다. 운전을 하면서
비를 맞고 우수수 길가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려 온다.
물론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결혼 전부터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가을을 타는 것 같다.
시애틀에 빗소리가
들리고 나무 색깔이 변해 가기 시작하면 마음 한 켠이 허전해지면서 가슴 속에 뭔가 들어있는 듯한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멍하니 창밖에 눈길을 주는 시간이 길어지면 굳이 날짜를 따져보지 않아도 가을이 왔다는 이야기다.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가을앓이를 많이 하게 되는 때는 추석명절 전후가 아닌가 싶다.
타국 땅에서 살면서
한국처럼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고향 생각도 많이 나고 자식이나 손주들도 더욱 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나만
가을을 타는 것이 아니다. 내가 회장으로 봉사를 하고 있는 노인회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추석
무렵, 이맘 때가 되면 가을앓이를 하는 한인 노인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풍이
물들고 하나 둘 낙엽이 되어 뒹구는 것만 봐도 마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여겨져 쓸쓸하다. 마음과
몸이 외로움으로 지쳐가는데 여러 날이 지나도 자식들로부터 안부 전화까지 없으면 그야말로 넓은 광야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고독하고 우울해진다.
자식들이
바쁜 줄 알면서도 엄습해오는 서운함과 쓸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노인들의 건강과 외로움은
자식들 목소리 하나로 해소가 된다고 한다. “자식들의 전화가 노인들의 건강과 보약이다”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러다
보니 먼저 자식들에게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도 계시지만 바쁜 자식을 귀찮게 하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 때문에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노인들이 쓸쓸하고 외로운 것은 한국말로 서로 소통하는 인간관계나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다
보니 노인들에게는 한인 노인회가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고, 가슴앓이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나
다름없다.
스노호미시
노인회는 늘 해오듯 올해 추석(13일)에도 약소하나마 추석잔치를
마련한다.송편은 물론이고 한인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전과 잡채 등등 푸짐한 음식도 준비할 생각이다. 이날 만은 우리 한국 전통 음식 등을 즐기면서 서로 서로 손을 잡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외로움을 달래 볼 생각이다.
추석이나 설 잔치때면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한인회 등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부모가 있든 그렇지 않든 한인 노인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 후원을
가져 주길 간절히 바랠 뿐이다.
자연에도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지 않은가. 자식들은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직접 찾아 뵙고 얼굴을
마주하고 한마디 대화라도 하고, 그것도 힘들면 전화라도 자주해서 부모들이 느끼는 가슴앓이를 조금이나마
해결해주시길 부탁드린다.
13일 노인회
추석잔치를 바로 코 앞에 두고도 지금까지 고민중이다.
어르신들에게 무슨 선물을 해드릴까? 어떤 음식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드릴까? 그날 어르신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