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 (오리건주 유진 중앙교회 담임)
미국에서 느낀 고향의 정
미국 여행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국을 출발한 후 비행기 안에서 태평양을 다 지나도록 장시간 동안 견뎌내어야 합니다.
미국 입국 세관통관을 거쳐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유진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거의 하루가 걸리는 긴 여정입니다. 더구나 어린 자녀와 함께 동행하면
긴장의 수위는 최고조에 달하기 마련입니다.
8월부터 찾아오기 시작하는 이주 가족이나 유학생들은 9월
중순경이면 거의 마감하게 됩니다. 금년 가을에 제일 늦게 도착한 가족은 정후네 식구였습니다. 9월말 유진 공항은 이날 따라 유난히 북적였습니다.
유진 시민인듯한
백인 승객들의 뒤를 이어 떠들썩한 중국인 승객들이 나오고 그 뒤에 승객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나오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돌이 막 지난 아들과 젊은 부부, 세 사람의 가족은 틀림없이
정후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시지요?” 긴장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던 젊은 부부는 우리말 인사에 금방 안도의 웃음이 온 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 하였습니다.
정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정후, 세 식구가
미국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이었습니다. 정후 가족을 알게 된 것은 지난9월 초순이었습니다.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저는 오는 10월1일자로 방문 연구원으로 오리건 대학교 철학과에 가게 된 박서현이라고
합니다. 제 아내도 같은 오리건 대학교 박물관에서 10개월간
인턴쉽을 하게 되어 저희는 막 두 돌이 지난 아들과 함께 9월26일에
출국하여 유진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혹시 저희 가족이 유진에 도착한 다음 잠시 동안이나마 머물 수 있는 곳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처음 연락을 드리면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진에서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서현 올림”
이 편지를
읽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친구의 글을 받은 것 같은 반가움이 컸습니다. 하루하루 정후네 가족을
기다리는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초원의 집에서 첫날의 경험은 정후네 가정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난히 빛나는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빛, 그리고 포근히 감싸는 분위기는
낯선 미국땅이 아니었습니다. 방 한 개의 아파트를 구하고 싶어했습니다.
유진에 온다는 메일을 받은 후 정후네가 꼭 필요한 거처를 찾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드렸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한 아파트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우선
대학교 출퇴근 교통이 좋았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그로서리 가게가 두 개나 있었습니다. 렌트도 높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아파트가 결정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은행구좌도 열었습니다. 전화기 개설도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살림만 장만하면 미국 정착의 첫걸음은 마치는 셈입니다. 준비해
두었던 접시, 수저, 그리고 침대매트, 의자 등을 전했습니다. 정후는 시차도 별로 힘들지 않는 듯이 보채지
않았습니다. 평생 처음 교회에 출석하던 날 교우들은 새로 도착한 정후네를 마음껏 축복해 주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시간에 정후 엄마는 예쁜 카드 한 장을 전해주었습니다. 조용히
펼친 카드에는 또박또박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전병두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께, 생면 부지의 저희 가족이 낯선 이곳 유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큰 도움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두분 덕분에 한국에서 느꼈던 고향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하며 이곳에서 삶을 잘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수저 하나 없었던 저희가 평안하고 따뜻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마음 써주셔서
감사 드리고 저희 가족이 앞으로 신앙도 갖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