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지진도 전쟁도 아닌데 세상이 이렇게
속수무책일 수 있나? 기막히다. 갑작스럽게 닥친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리듯 감염병이 우리의 일상을 덮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일으킨 재앙이 순식간에 지구촌을
삼켜 버렸다. 학교, 도서관, 체육관, 사회시설이 다 폐쇄되더니 이제는 모두 자택에서 대피하고
있으라 한다.
실버타운에 사시는 어머니도 뵈러
갈 수 없다. 면회가 금지되었다. 어머니는 1층 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도 같이 못한다. 식사를 문 앞으로 배달해준다고
한다. 프랑스에 사는 친구는 시민들이 자택 대피에 들어간 날부터 쓴 일지를 가끔 보내 주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된 친구는 노인들을 보살피는 방문 간호사다. 바깥사람으로서
환자들에게 출입이 허용된 몇 안 되는 직종이라고 한다. 자식도 부모를 못 보러 가는데, 온종일 누군가의 방문만 기다리는 구십이 넘은 환자들이 있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분들은 꼭 ‘바깥소식’과 ‘바깥 날씨’를 물어온다고 한다.
이 사태로 고통받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매일 전해 듣는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작은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학부모는 거처할 곳을 잃었는데, 가족은
아프고 자신은 임신 9개월이란다. 그 와중에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현실이 걱정돼 교사인 나에게 소식을 전해왔다. 그 심정이 어떨지 가슴이 떨려온다. 오늘도 한 학생이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런 시기에 힘이 되는 일들이 있다.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어느 때보다 멀리서도 함께함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 기도문을 전달해 주시는 분, 시편 91편을 보내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다니엘 9장 1~19절을 읽으면서 더 깊은 기도를 하게 된다고 알려 주신
분도 있다. 공립학교 한국어 교사들은 활발하게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수업 자료들을 주고받는다.
위기를 기회로! 한국학교 선생님들도 큰일을 해냈다. 시애틀ㆍ벨뷰 통합학교는 이미 3월 첫 두 주를 코로나19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휴교를 한 바 있다. 곧이어 공립학교도 6주간 휴교에 들어가면서
교실을 빌려 쓰는 우리도 당연히 계속 수업을 못 하게 되었다.
이사회와 교사들은 한글학교의 온라인
수업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삼월 첫 두 주 휴교 동안 선생님들은 줌(Zoom)이란
화상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진행하는 수업 방법을 배웠다. 주중에도 모여 화상회의 기능을 배우고 서로 수업해
보는 열정을 보였다.
처음 시도해 보는 선생님들은 두려움이
많았다. 특히 유아반, 유치반에서도 화상 수업이 가능할지
걱정이 많았다. 학생들이 컴퓨터앞에서 어떻게 세 시간 동안 수업을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었다. 논의 끝에 선생님들이 과제를 올리면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교실을 만들었다.
초등학교까지는 씨소(Seesaw), 중고등반과 성인반은 구글 클래스룸(Google Classroom)에 교실을 만들어 수업자료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과제를 올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두 주간에 일어난 일이다.
온라인 수업에 회의적이었던 학부모들도
교사가 초대한 교실을 방문해보고 학생들을 지원하였다. 집에서 어린 자녀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한국학교 수업이 재개되는 것을 보고 학부모들도 기뻐했다. 한국학교
구성원 모두 처음 도전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합력하여 새로운 기술을 배워
실천했고, 앞으로도 주말에 한 번 모이는 한계를 극복해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 세대는 전대미문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회는 급변화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해도 생산성에
차질이 없음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한 기술을 생활에 접목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이 어처구니없는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지금 우리를 어떻게
기록할까? 휴지와 생필품이 동나는 부끄러운 사재기 현장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이어야 한다. 합심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같은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졌던 시간이어야 한다.
아무리 시국이 이래도 봄은 오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텃밭의 흙을 갈아엎는다. 소시민인
나는 씨를 뿌리고 꽃을 심고, 하루하루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자택 대피를 포함한 정부의 시책들을 잘 지켜야겠다. 그래야 모두가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이 시기에 적절한
구호를 외쳐본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