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소망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대구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9분쯤 대구 북구 한 주택에서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A군(14), 초등학생
딸 B양(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죽음은 A군 담임교사의
신고로 밝혀졌다.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등교했던 A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담임 교사가 A군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담임 교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숨진 일가족 곁에서 극단적 선택에 쓰인 도구도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가족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10년 전쯤
개인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난 뒤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택
건물 입구에는 이 가족 앞으로 온 독촉장이 수십 장 쌓여 있었다. 가정이 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웃들은
숨진 일가족과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 1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웃들은 “그 가족들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중앙일보에서
발췌)
필자는 20살 때 혼자 자취하며 학교에 다녀야 하는 극단적 어려움을 겪어 본적이
있다. 목사가
된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년 동안 밥을 먹어보지 못한 채 가게에서 사온 국수로만 끼니를 때웠다. 과연
신앙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그렇게 극단적 어려움과 가난을 극복해낼 수가 있었을까 싶다.
우리들도
지난 2008년의
경제위기를 겪어봤다. 한인사회에서도 여럿이 자살을 하는 비극적인 위기였다. 그때
이 종은 성도들에게 선포했다. “교회당을
팔아서라도 여러분들의 생계를 책임질 테니 제발 극단적인 절망만은 하지 마시라”고 말이다.
그리고
교회 사무실에다 쌀포대기를 쌓아 놓고 누구든지 필요하면 가지고 가도록 했다. 가난은 죄는 아니지만 참으로
무서운 공포다.
겨우 14살이
된 중학생 아들과 11살이
된 초등학생 딸을 죽여야 했던 부모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경제적 어려움이 그 얼마나 극심했으며 이렇게 했을까? 동정도
가고 이해도 안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닌 것 같다.
간단하게
소개해드린 앞서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가정의 사회성 결여다. 그들은 전혀 이웃과 교류하지 않았고, 바로
그들이 살고 있던 건물 1층에서
식당을 하던 사람들조차도 그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그 가정의 큰 문제였던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성공할 때도 있고 넉넉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너무나 가난해 몇 끼를 굶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런
때마다 사람이 다 이처럼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죽어 나가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줄을 알아야 한다. 있으면 나누어 주고 없으면 좀 나누자고 할 수 있는 이웃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이런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라는 특별한 세상을 만나야
한다. 교회는 결코 누군가가 굶어서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교회라는
특수공동체는 결코 어느 한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극의 주인공들은 자신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한계에 달하게 되자 그렇게도 소중한 생명들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소망이 사라지면 더 이상 살아갈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고통의 깊은 늪을 건너보았던 사도 바울은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롬8:23-25)고 말이다. 역시
진정한 소망은 구유에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