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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6 15:14
최연소 대통령 꿈꾸던 청년 바이든, 최고령 대통령 예약
29세에 상원 의원 당선, 역대 두번째 최연소 케네디 대통령 취임 연설 듣고 정치 결심
3수 끝에 역대 최고령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은 28세에 지역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정치활동 경력이 50년 가까이 되는 워싱턴 정계 최고 베테랑이다.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인 29세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최연소 대통령을 꿈꾸던 그는 78세, 역대 가장 많은 나이로 그 꿈을 이룰 전망이다. 그는 초경합주 조지아에 이어 펜실베이니아에서도 역전에 성공, 선거인단을 289석을 확보할 전망이다. 이는 과반인 270석을 훨씬 넘긴 수치다.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큰랜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어린 시절 말을 더듬고 왜소한 체격으로 학교에서 자주 놀림을 당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평생 삶을 비관한 삼촌처럼 되고 싶지 않아 조약돌을 입에 물고 시를 통째로 암송하는 등 부단한 노력으로 말 더듬는 것을 고치는 데 성공한다.
이후 델라웨어대학에 들어간 바이든은 '평등·공정·정의를 지키고, 우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1961년)을 듣고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자신처럼 부유하지도 않고 연줄도 없는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워싱턴에 입성하려면 변호사가 되는 방법에 없었다는 걸 깨닫고 시러큐스 로스쿨에 들어간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 대형로펌 '프리켓, 워드 버트&샌더스'에 들어갔다 안전사고로 심하게 화상을 입은 용접공을 상대로 대기업 편에서 변론을 하는 상사의 재판을 지켜보던 그는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 주택 대출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이든은 당시를 회상하며 '제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목표한 바를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며 소수자와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국선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뉴캐슬카운티 의회 선거를 거쳐 1972년 케일럽 보그스라는 정치 거물을 대역전극으로 꺾고 델라어웨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기적을 연출했다. 20대 신예가 26년 간 주 전체에서 한 번도 진 적 없는 노정치인을 꺾은 것이다.
이후 내리 6선에 성공하며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민주당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법사위원장, 외교위원장 등을 지내며 공화당 의원들과도 협치와 상생정치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성실히 법안을 연구하고 표결에 참여했지만 전국구 인사는 아니었던 바이든이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88년 로버트 보크 대법관 임명 청문회.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로서는 반드시 보수 성향의 법관을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바이든은 '판사의 인격과 자격이 아닌 정치적 이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많은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표를 이끌어낸다.
이처럼 화려한 정치 경력을 자랑하지만 바이든의 인생이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상원의원 당선 직후에 교통사고로 첫 아내와 13개월 난 딸을 잃었고, 2016년 정치적 후계자로 생각했던 장남 보 바이든이 암으로 숨지는 등 아픔을 겪었다.
1988년 대권 출사표를 던졌지만 영국 정치인 닉 케닉 연설 표절, 로스쿨 보고서 표절 시비 등에 휘말리면서 정치적 좌절을 겪기도 했다. 결국 후보를 중도사퇴한다. 이후 대법관 임명 청문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논란이 사그라들던 찰나 뇌동맥류로 쓰러지면서 인생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2차례 위험한 수술을 거쳐 정치 일선에 복귀해 여성폭력방지법이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코소보 내전 해결을 주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여성폭력과 코소보 내전 모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부터 수년간 끈질기게 의원들과 대통령을 설득한 끝에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후 2008년 버락 오마바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2009~2017년까지 부통령을 지냈다. 참신하지만 노련함이 부족했던 오바마를 외교 분야의 전문가적 역량으로 8년 동안 보좌하면서 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러닝메이트였던 바이든을 "마음 속 깊이 중산층의 가치가 뿌리내린 외교정책 전문가이자 독재자들에 맞서고 미국의 경찰과 소방관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나의 파트너"라고 높이 평가했다.
가족을 잃고 한때 모든 걸 포기하려 했던 초선의 젊은 의원은 이제 다양성을 강조하고 약자를 위하는 정책으로, 분열된 미국 사회를 봉합할 대통령을 예약했다. 지난 1970년 청운의 꿈을 안고 정치를 시작한 지 꼭 50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