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전 스노호미시 한미노인회장
한인 노인회관을 꿈꾸며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인 것 같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며 “올해는 우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자”고 다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바로 황금돼지해 마지막 날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음을 실감한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면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의 새해도 힘차게 떠오르며 모두들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스노호미시 한미노인회 회원 분들도 새롭게 떠오른 태양을 보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겠지만 나이가 한 살 더 늘어나는 것이 마냥 반갑지 만은 않다.
스노호미시 노인회 회원들은 최고령자가 102세에 달할 정도로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딱 두 번 만나지만 몇 주 보이지 않아 확인해보면 하늘나라로 떠난 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보이던 얼굴이 안보이면 왠지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머나먼 고국을 떠나 이민생활을 하는 한인 노인들의 입장에선 일주일에 두 번 만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 된다.
일상적인 모임 외에도 신정과 구정 설잔치, 야유회, 추석 잔치는 물론이고 합창과 라인댄스로 아리랑의 밤 공연에 출연했던 것은 잊혀지지 않은 소중한 추억이자 삶의 큰 활력소가 됐다.
올해 스노호미시 노인회와 내 개인이 린우드경찰국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던 것도 우리 모두의 행복이었다.
이민 생활이나 현대 생활의 특성상 자녀나 손주 등 가족들과도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도 안 되는 노인들에게 ‘노인회’는 그만큼 소중한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노인들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나’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노인들이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은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교류를 필요로 하는데, 노인들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이때 느껴지는 정서적 소외감이 불행의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교제해야 한다는 점인데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과 만나 교제하는 것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노인회가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한다고 자부한다. 노인들에게 친구들로부터 받는 정서적 안정과 지지는 가족으로부터 받는 지지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장소가 없어 스노호미시 노인회는 월요일과 금요일 단 두 번 밖에 만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오갈 데가 없어 매일 오후까지 린우드 몰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시간을 때우는 한인 노인들도 많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내가 지난 2년간 노인회장을 맡으면서 매번 느꼈던 것은 언제든 한인 노인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노인회관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동네마다 노인회관이 있지만 이민생활을 하는 이곳에선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모일 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라도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취미생활도 하고, 회원 상호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형태의 회관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내일이면 나도 회장직에서 물러나지만 노인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지속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올해를 마감하면서 우리 노인회원 모두가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녀들이 하루에 한번씩이라도 부모님께 전화라도 하고, 가끔 찾아가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새해에는 한인 사회가 노인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과 사랑을 갖고 바라보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