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하 목사/오리건 벧엘장로교회 담임
형제 자매를 내 몸처럼 사랑하세요
신약의 절반 이상 분량의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는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하신 형제와 자매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들을 품어주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이 같은 사랑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 7: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역시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고 강조합니다. 즉
예수님과 바울은 어떤 비판도 공통적으로 죄라고 명시합니다.
하지만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건설적인 비판도 금지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문제와 모순을 방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세상을 정화하는 빛과 소금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비판과 분별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비판은 금지하고 분별은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우리는 비판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판과 분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비판은 영어로 Judgment로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지적하고 정죄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분별은 Discern으로
불명확한 것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비판의 동기는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충분하지 않은 근거로 의심하고 속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비판은 주관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결과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하지만 분별은 상대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해 주기 위해서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별의
결과는 비판과 달리 긍정적이고 생산적입니다.
우리는 분별을 통해 이웃을 세워주되 비판을 통해 이웃을 쓰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 사도는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4장11절)”고 강조합니다.
문제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문제가 있는 세상에 해결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은 내가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비판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비판은 또 다른 비판을 만들 뿐입니다. 모든 관계의 문제는 문을
여는 궁극적인 열쇠는 진실한 낮아짐과 겸손과 관용이 바탕이 된 ‘사랑’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