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담임)
형제를 사랑하라-신명기 연구(2)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관계형성이다.
이것은 삶의 안전지대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하다. 삶에 마음의 안식, 평안 그리고 위로를 주는 곳은 가정이다. 그 이유는 가정은 부모와 형제가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배우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계획하신 것은 부부의 연합을 통해 가정을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손에 대한 씨의 축복의 열매를 주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알았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리더로서 출애굽 이후에 세일 산 근처 에돔 산악 지대에서 38년 동안 거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편 북쪽을 향해 진군을 하는데 있어서 에돔 족속을 공격하지 말고 그들과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신2:5).
여기서 나오는 에서는 이스라엘 족장 이삭과 리브가에서 낳은 장자이고 그의 동생은 야곱이다. 야곱이 아들 요셉의 초대로 애굽에서 정착을 시작한 것은 요셉의 네 식구와 더불어 총 70명이었다. 그런데 430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민족의 장정 60만명과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출애굽을 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기 이전 북쪽으로 진군을 하는데 큰 장애물을 에돔 족속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그들에게서 양식과 물까지도 사먹도록 명령하셨다.
그리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씨름을 한 것은 세일 지역을 통과한 후에 모압과 암몬 족속을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은 모압과 암몬 자손들을 ‘괴롭히지도 말고 그들과 싸우지도 말라’고 한 것이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받은 후에 롯의 두 딸이 아버지 롯에게 술에 취하게 한 후 아버지와 관계를 통해 큰 딸은 모압을 낳고 둘째 딸은 암몬을 낳게 된다.
롯은 이스라엘 족속의 혈통으로 볼 때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의 아들 즉 아브라함 친 조카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북쪽으로 향해 이동을 하는데 있어서 모압과 암몬 족속들과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기를 바랐으며 에돔과 모압과 암몬 족속에게는 요단강 동편을 통해 민족을 형성하도록 계획하셨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형제와 형제가 어떤 관계로 공존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광야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혈육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함을 받은 형제와 자매들에게 영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소아시아, 로마,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까지 복음을 전했다. 초대교회가 빠른 속도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인내를 통해 형제애를 보여 준 것이다.
그 중에 하나의 예를 들자면 AD 2-3세기에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보는데서 순교자들은 사나운 짐승과 투사들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과정에서도 그들에게 대항하지 아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형제와 형제간의 사랑의 키스를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에게 보여주신 인내에 의한 하나님의 캐릭터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인내의 태도에 관한 말씀은 마태복음5:39절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이것이 바로 형제와 형제를 대하는 기독교인의 형제애 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 인류 전체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공생에 기간에 말씀을 하셨다.
교회가 성장하고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공동체가 영적인 전투를 하는데 있어서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어둠의 권세를 쥐고 있는 악한 영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인내를 통한 사랑에 의한 형제애가 아니고서는 복음의 열매는 쉽게 맺을 수 없다. 이것으로 볼 때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형제를 사랑하며 영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