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염려하지
말라
아더 랭크라는
영국의 실업가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다.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생각하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둔 뒤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해 상자 속 메모지를 살펴봤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제였던 것들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더라는 사실이었다. 이 상자를 계속 활용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은
염려의 무가치성에 대해 훨씬 더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말이다.
이는 도덕군자의
말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 방안을 찾되, 전전긍긍하며
염려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염려는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서 생겨나므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염려가 밀려올 때는 “하나님, 염려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자꾸 염려하게 됩니다. 저의 염려의 목록들을 조목조목 아뢰오니
맡아 해결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우리 문제를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께서 그 염려들을 명쾌한 응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처럼 만 가지가 다 필요하고 모자라고 위험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우리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시면서 아무 것도 모르시는 척 명령하신다. 바로 “염려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우리는
매일 8만6,400초를 허락 받아 살아가고 있다. 단 한 순간도 이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그런데 그렇게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은 어느 순간 내 앞에서 멈추게 된다.
바로 우리들이
죽었을 때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매 순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성과 시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은 매일 냉철한 인생일진데 그 소중한 시간들을 아무런 소용도 없는 염려와 걱정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를 지켜보시는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생각이시기도 하다.
언제 병이
들지, 언제 사고를 만나게 될지, 언제 심장이 멎고 이 세상을
떠나야 될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그 소중한 시간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다투고 미워하며 낭비한다면
예수님은 진심으로 이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계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부탁도 하시고 충고도
하시고 때로는 엄중하게 명령도 하신다. 건강을 위해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는 염려와 걱정을 버리고 언제나
사고를 당할는지 알 수 없으니 늘 주님을 의지하고 언제 그 소중한 생명을 잃을지 모르니 영생을 취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