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완전한 사람은 없다!
목회를 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긴 경험을 통해 사람의 잘못된 습관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조급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미리 실망한 나머지 관계까지 끊어버린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45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이제야 조금은 그러한 판단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가지면 성공한 인생쯤으로 치부하지만75년 동안 이에 대해 연구한 하버드대학의 결론은 그것이 아니었음을 필자가 이미 칼럼에 쓴 적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부과 명예가 아니라 바로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긴 연구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통해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면 교만일까?
우리들이 비록 뿌리가 없는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이민생활을 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좀 더
참아주고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면 그렇게 꼭 등을 돌리고 헤어지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리며 외롭게 인생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격언에 “Should not judge whole by a part”라는
말이 있다. “일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필자는 청년 때부터 이 격언을 접하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너무 빨리 사람에게 실망을 하며 돌아서버린 우를 많이 범한 것
같다.
사람은 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완전하고 실수가 없다면 평생토록 위반 티켓이나 사고를 만들지 말아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티켓을 받기도 하고 사고를 치기도 하는데 이는 스스로의 생각이나 판단이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셈이다.
실제로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완전 한 것인가를 입증해 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서울신문 손영식 해외통신원이 올린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쓰레기매립지에서 병아리 수천 마리가 부화해 화제다. 엄마 없이 태어난 병아리 중 일부는 천운처럼
가정에 입양(?)돼 돌봄을 받게 됐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약 30km 떨어진 지방 마르네울리의 쓰레기매립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마르네울리 라디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얼마 전 마르네울리의 쓰레기매립지엔 달걀이 대거 버려졌다.
주변의 한 양계장이 상한 달걀을 폐기처분하면서다. 끈질긴 생명력의 기적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얼마 후 버려진 달걀을 깨고 병아리들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기하학적으로 늘어나 금세 쓰레기매립지를 가득 메웠다. 병아리들도 지저분한 쓰레기매립지는 싫었던 모양이다.
부화한 병아리들은 인근의 도심권을 향해 돌진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발견된 병아리 중 일부는 입양됐다. 어떻게 버려진 달걀에서 병아리들이 부화할 수 있었을까? 양계장은 상한 달걀을 버린다고 했지만 상당수는 멀쩡한 달걀이었던 것이다.
억울하게(?) 버려진 달걀에 생명을 불어넣은 건 쓰레기매립지의 환경이었다. 쓰레기매립지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셈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낄 수가 있는가? 계란은 그 자체로 돈이다. 누가 돈인 계란을 버리겠는가? 버린 사람들은 계란이 상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계란은 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부화해 병아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다. 모두가 다 자신은 완전하고
남은 불완전하다고 판단하기에 인간관계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한 번쯤은 나도 잘못 보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되잡아 보아야 하겠다. 계란이야 실수해서 버려도 병아리로 새로운 생명이 되어 돌아왔지만
행여 실수하여 소중한 사람을 버린다면 인생에서 그 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곧 인생의
보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