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하 목사(벧엘장로교회 담임)
오리건 사람들의 저력
몇 년 전 휴가 때 샌프란시스코를 지나면서 서부의 사립명문인 스탠포드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의 중심에 위치한 후버타워를 올라가려고 했는데 주말이라 여행객들이 많아 줄이 길었습니다.
엘리베이터 표를 사고 대기하는 동안 1층에 있는 후버 대통령의 박물관을
잠시 관람했습니다.
미국의 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스탠포드
대학의 초창기 학생이었습니다. 후버 대통령의 전시관에는 그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전시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청소년기에 거주했던 오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후버 대통령은 독일에서 이주한 독실한 퀘이커 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이오와에 살 때 부모를 잃고 11살의 나이에 삼촌과 함께 퀘이커 교도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던 오리건
뉴버그로 이사 오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교회에서 남쪽으로 30분
정도 운전 거리에는 퀘이커 교도들이 세운 조지폭스 대학 앞에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후버' 스트리트가 있습니다.
스탠포드 박물관에는 후버 대통령이 부모를 잃고
매우 외로웠지만 오리건주에서 사는 동안 다양한 자연환경이 그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삼촌과 함께 자주 오리건 해변과 산과 숲을 여행하면서 상상력을 키운 것이 그가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즉,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를 오리건에서 보낸 후버 대통령의 경험이 장차 대공황 당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직감과 창의력과 분별력을 키워준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이런 실력을 대통령 재임기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경제
대공황을 돌파하기 위해 1931년 후버댐을 만들고 수많은 토목공사를 주도해 나감으로써 수많은 실업자를
구제합니다.
후버 대통령은 정계에 진출한 뒤에도 항상 오리건을 그의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오리건을 미국 서부 귀퉁이에 자리잡은 외딴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리건은 자연경관의 아름다움과 다양성 속에서 상상력을 개발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런 창의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기고 창업이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혁신의 땅입니다.
나이키는 이 지역에서 작은 한 개의 매장에서 시작돼 그 분야 세계 1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또한 오리건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 환경
속에 창의력과 신앙이 융합되면서 놀라운 주님의 사역자들이 일어납니다.
한국을 넘어 전세계의 구호기관을
대표하는 월드비전은 밥 피얼스 목사에 의해 1950년 포틀랜드 오리건에서 창립됐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처음 해외 아동들의 입양법안을 통과시키고 1955년
홀트복지회를 만들어 한국전쟁 직후 10만 명의 고아들을 입양시킨 해리 버사 홀트 부부 역시 오리건 유진
출신의 농부들이었습니다.
또한 1956년 에콰도르 정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짐 엘리엇 선교사, 영성 신학자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준 리차드
포스터 역시 모두 오리건 출신의 영적 거장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오리건에서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오리건은 자연 속에 함양된 순수함이 신앙적 열정과 융합되었을 때 창의적인 교회
사역이 개발되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폭발이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곳 오리건에 사는 동안 무엇을 시작하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얼마나 가치 있는 자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리건은 땅이 좋아서 씨만 뿌려도 잘 자란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오리건은 그리스도의 꿈을 뿌려도 다른 지역과 비교가 안 되는 풍성한 열매가 있는 곳입니다. 물론 이민자의
삶은 피곤합니다. 하지만 지친다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사명자로 살게 되길 축복합니다.
주님과 함께 꿈을 꾸고 삶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분의 영광을 위한 일을 시작하십시오. 그럴 때 피곤이 풀리고 신바람이 나고 삶의 넘치는 의욕과 의미가 생깁니다.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주님 높임을 받으소서. 나를 통하여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