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라(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꽉 찬 나이
오늘 가족 채팅방에는 생일 축하 인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과 시누이 남편의 생일이 같은 날이라 서로 축하 인사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의 생일은 같은 날이 아니다. 남편의 생일은 12월 11일, 시누이 남편의 생일은 12월 12일인데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 살다 보니 일어나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다.
날짜가 하루빨리 가는 한국은 12일, 여기 미국은 11일. 그래서 매년 우리 가족은 두 사람의 생일 축하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한다.
한참 축하 인사를 주고받은 후, 동생이 곧 태어날 아기의 분만 예정일은 이번 토요일이지만 그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다음 주 수요일에 유도분만을 할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난 눈치 없이 시누이 남편에게도 얼른 둘째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대뜸 2018년에는 안되고, 2019년에 둘째 조카를 안겨 드리겠단다.
이유인즉슨, 금세 두 살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꽉 찬 나이’를 선물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12월생인 사람만이 공감하는 이야기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태어난 지 20일 만에, 시누이 남편은 19일 만에 두 살이 된 셈이다. 동생네 아기도 다음 주 수요일에 태어난다면, 그 아기는 11일 만에 두 살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3D 사진 속 양수에 퉁퉁 불어있는 아기 얼굴을 보며 벌써 늙은 것 같다고 농담을 하며 웃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는 나이’를 사용하는 한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궁금한 김에 조금 더 알아보니, 보통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만 나이’와 옛날 동아시아에서 사용했던 ‘세는 나이’ 외에도 ‘연 나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나이 셈법이다. 한국의 행정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란다.
그렇다면 어제의 경우, 남편의 나이가 만 나이로는 38세, 연 나이로는 39세, 세는 나이로는 40세였다는 것이다. 이건 도대체 38세라는 건지, 39세라는 건지, 40세라는 건지. 나이 셈을 하다가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매년 1월 1일엔 그 해, 첫 아기에 대한 뉴스가 난다. 분만실엔 이미 방송국 촬영팀이 아기의 탄생을 찍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새해 첫 아기에게 선물할 아기용품도 병실 한가득 보인다.
그런데 1월 1일에 태어난 아기가 새로운 이미지를 갖는 데에 비교해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는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두 살이 된다.
이미 ‘새’ 이미지를 벗고, ‘헌’ 이미지를 입는 것 같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신생아에게 ‘넌 오늘부터 두 살이야.’라고 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1년 후에도 돌잔치를 하자마자 3살이 될 것이다. 시누이 남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둘째에게 ‘꽉 찬 나이’를 선물하고 싶다는 말. 하지만 이 ‘세는 나이’나 ‘연 나이’의 이면도 미국에 사는 내겐 그저 앞으로 점점 잊힐 일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단지 사람들이 일정 기준에 따라 한 해를 정해 놓아 나이를 만든 것이다. 2017년 12월 31일과 2018년 1월 1일은 그리 다르지 않은 시간이다. 하루 차이에 계절이 바뀌지도, 사람이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 년을 정하고, 나이를 세는 것은 후회스러운 과거를 끊어내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심은 아닐는지.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께선 새해에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두 그릇을 먹고, 두 살을 먹었노라고 자랑을했다. 그때, 그 순수했던 나이 셈법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