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그의 열매로 그를 안다
누구나 공감하는 말 가운데는 “천하에 죽지 아니한 사람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배움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들이
있다. 하나를 더 보태자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도 있다.
흙이 이처럼 정직한 까닭은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결같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해주기 때문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곳에 팥을 나게 해 주는 것”이 흙이기에 그 뜨거운 뙤약볕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부들은 피곤함과 고달픔을 극복하고 보람을 느껴가며
평생 농사를 생업으로 삼아 살아간다.
찬송가 260장도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일을
마쳐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고 노래한다.
이런 이치는 농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누구나 일생 동안 농부처럼 뭔가를 심고 가꾼다. 게으름을 심으면 게으름을 거두고, 부지런함을 심으면 반드시 거기에
부흥하는 열매가 따라온다. 농부들은 봄철에 흙을 파헤쳐 땅 속에 씨를 심지만 우리는 일생을 통해 생활
속에다 심고 있다.
동물과 우리가 다른 것은 동물에겐 생존만 있을 뿐 생활은 없다. 생존은 살아 있다는 뜻으로 목숨을
이어간다는 의미만 있지만 생활은 생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살아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이
유지되려면 사람의 경우 반드시 활동함이 수반돼야 한다. 성서는 이 활동을 ‘열매’라 일러준다. 열매와
관계된 것이 나무다.
‘나무’를 히브리어로 ‘에츠(Ehts)’라 하고 헬라어로
‘덴드론(δενδρον)’이라 한다. 나무의 일생이나 우리의 일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씨앗에서 싹이 생겨나 줄기와 잎이 생기고 뿌리를 내려 꽃이 피고 끝에 가서는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유년기가 청년기로 바뀌고 장년기가 다시 노년기로 옮겨지며 사람도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라디아서 6:7). 그 거두는 것이 곧 열매다.
성경은 이 열매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성령의 열매인데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고(갈라디아서 5:22~23),
두 번째는 빛의 열매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에베소서 5:9).
셋째는 사랑의 열매인데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고린도전서 13:4-7).
이 세 가지 종류의 열매들을 덕목 별로 나누면 27가지인데 이 덕목 가운데 중요한 덕목 하나만을
골라 부언(附言)을 하자면‘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헬라어로 ‘에고(εγο)’라 하는데 영어의 ‘Egoist’란 낱말이 이‘에고’에서 왔다. ‘자기 유익 만을 챙기는
이기주의자’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영어 성경은 “Love does not seek his own”이라고 했는데 ‘Seek’란
동사는 끝까지 추구하여 얻으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함정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내 나무에는 지금 무슨
열매가 열려 있는지, 스스로를 깊이 성찰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