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음악가와 사진 작가로 활동하며 미국 내 대표적인 한인 예술가로 평가를 받았던 남궁요설 선생이 지난 22일
오후 7시50분 린우드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4세.
10년
넘게 남궁 선생 곁을 지키며 그의 활동을 도왔던 부인 모니카 남궁씨는 “선생님께서 3주전부터 기운을 많이 잃으셔서 누워 계시다 지난 21일 숨이 가빠지신
가운데 22일밤 내가 성경을 읽어드리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1919년 4월24일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5살 때 평양으로 옮겨간 남궁 선생은 한국 최초의 신학자로 한국전 당시 북한에 납북돼 ‘공산주의를
선전하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단식으로 투쟁하다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남궁 혁 목사의 아들이다. 또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이며 한국 최초의 신문인 황성일보의
사장을 지낸 남궁 억 선생을 큰 아버지로 두고 있다.
슈베르트
음악을 남달리 좋아했던 남궁 선생은 13살 때 슈베르트 명가곡 ‘보리수’가사를 "성문 앞 우물가..."로 시작하는 한글로 번역했으며, 일본에서 성악(베이스)을
전공한 뒤 중국 상하이 교향악단과 고려 교향악단 매니저를 지내기도 했다.
지난
1947년 워싱턴대학(UW)으로 유학 온 남궁 선생은 사진작가로
변신해‘신 사실주의 사진’의 지평을 열며 근대 풍경사진의 원조인 안셀 아담스와 함께 사진예술에 정진했다.
특히
자연을 소재로 한 남궁 선생의 작품은 순간을 포착, 마치 유화를 그려놓은 것처럼 독특한 사진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생전에
수많은 작품 활동집을 내기도 했던 남궁 선생은 지난해 5월 성악가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한 1950년대 후반부터 촬영 활동을 중단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 작품 100여 점을 담은 영문 회고록을 내기도 했다.
미국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월27일자 기사를 통해 회고록을 상세히 보도한 뒤 “남궁 작가의 작품은
연금술적인 아이디어가 대자연의 조화를 이뤄냈다”며 극찬을 하기도 했다.
UW도
지난해 개교 150주년을 맞아 모교를 빛낸 150인에 선생을
선정하기도 했다. 남궁 선생은 워싱턴주 한인미술인협회에 참여하는 한편 매년 1,000달러의 장학금까지 내놓으며 한인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헌신을 해왔다.
유가족으로
부인 모니카 남궁씨와 첫번째 일본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린 남궁씨 등 두 딸이 있다.
장례 예배는 27일 오후 5시 아카시아 장례 식장(14951 Bothell Way NE Seattle, WA 98155)에서 평강장로교회 박은일 목사의 집례로 거행된다. (425)672-4765
[이 게시물은 시애틀N님에 의해 2013-07-24 00:06:18 헤드라인 뉴스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