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자 수필가(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새벽 눈
크리스마스의 케롤송(탄일종이 댕땡땡 은은하게 들리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 일종이 울리네)이 조용히 적막을 흔들어 깨웁니다.
어린 아이는 부스스 일어나 두꺼운
옷을 껴입고 현관문을 몰래 열고 나옵니다. 바깥은 밤새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뿌려준 흰 가루가 하얀 솜이불이
되어 온 동네를 덮었어요.
백색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한 새벽 눈에 이끌리어 겁도 없이 팔과 다리를 벌려
푹신한 요에 덥석 누워 사진 찍네요. 사진 속에 있는 흰 모습을 보며 싸인 대신 작은 솜 뭉치를 입에
넣어 살살 녹는 생수를 음미하네요. 새벽 눈에 유혹되어 은 세계에서 꿈을 꾸고 있어요.
사춘기가
되어서는 빨리 어른 흉내 내고 싶어 혼합구성원 찬양팀에 들어가 새벽 송 도는 일에 참여했답니다. 새벽
눈을 맞으며 어두운 시골 동네를 가노라면, 흰 눈으로 반사된 고요한 길이 마음들을 즐겁게 했어요.
추위에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화음으로 작은 음악회를 연상케 하는 새벽 송을 불렀어요. 현관문이
열리고 기뻐하는 가족들과 화답하는 인사로 사랑을 나누고, 수고한다는 선물까지 받아 다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지요.
새벽 눈을 밟으면서 성탄의 기쁨을
알리는 일이 얼마나 신이 났던지요. 혼성합창단 단원들은 피곤한 줄 모르고 새벽 동틀 무렵까지 그 먼
외진 곳들에 새벽 송으로 성탄을 전하고 다녔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아름다운 장면들이었어요.
몇 해 전 잠이 들기 전이었어요. 우리 동네에서 성탄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듯싶어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열었어요.
아이들을 포함한 이십여 명이 집집을 돌며, 새벽 송이 아닌 밤중송을 부르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떨리고 감격스러웠던지, 모두가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며 돌아갈 때까지 한참이나 그들을 배웅했습니다.
지구온난화란 기후 변화 때문인지
시애틀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래서 겨울 눈이 그리워 눈 구경하러 갑니다. 창밖을 통해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시야엔 흰옷으로 갈아입은 나목과 상록수들이 백의의 천사들로 서있고, 더럽혀진 자국들은 오 간데없이 눈송이들로 소복이 내려앉아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언제나 운전할 때 차창 밖에서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사철 눈 산들이 손짓을 합니다. 겨울 낭만을 위해 가고 싶은 유혹을 잠재우는 대리만족으로
충분하니까요.
이제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놓고
있어요. 일년을 돌아보며 상념에 젖습니다.
유난히도 새벽 눈에 찍혀진 추억들이
이맘 때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부터는 마음에 내리는 눈을 기대합니다. 더럽고 허접스러웠던 지난 날의 찌꺼기가 하얀 눈으로 변화된 새벽 눈을 마음 안에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맑은 하늘에서 뿌려지는 흰 꽃가루로 마음의
정원을 가꾸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