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부활하는 ‘백두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깔두건과 흰 도포로 가린 괴한이 한인업소에 들어선다. 주인은
강도인줄 알고 돈을 건넨다. 괴한은 돈을 받지 않고 “좋게 말할 때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협박한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악명 높은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은 요즘 흑인탄압 아닌 이민반대를 우선적 행동강령으로 삼는다.
KKK는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군 출신 6명이 백인지배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꼭 150년 전 테네시주 풀래스키에서
결성했다.
동아리 형태였던 KKK는 1920년대 밀려온 유대인 등 유럽 이민자들에 불안해진 보수 백인들이 가입하면서 회원이 최대 500만명(추정)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 단체는 1960년대 전국을 휩쓴 인권운동에 밀려나 사실상
궤멸됐다.
그 KKK가 올해 선거에서 달라진 정치풍향계를 타고 부활의 고고성을
올리고 있다. 이민법 개혁에 실패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 상황인데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의
이민반대, 국경폐쇄, 고립주의, 대외 적대정책 등 공약이 KKK와 맞아 떨어진다. 한 KKK 간부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으면 미국 전통유산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캘리포니아주 애나하임에서KKK 단원 6명이 트럼프 지지 가두행진을 벌이려다가 흑인 등 반대시위자 30여명과 패싸움을 벌였다.
지난4월엔 조지아주에서 KKK 단원 60여명이 두
곳에서 따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해가 지자 횃불을 들고 벌판에 원형으로 둘러서서 “백인파워 만세”
“우리의 적들과 불신자들에 죽음을” 등의 슬로건을 연호했다.
특히 지난 6일엔 KKK가
조지아주 정부와 4년여에 걸쳐 벌여온 법정싸움에서 백만 원군의 승소판결을 받았다.
조지아주 대법원은 지난 2012년KKK의 도로변 청소 자원봉사 신청을 주정부가 거부한 것은 헌법위반이라는 하급법원의 판결이 옳다고 판시했다. 이 프로그램의 담당부서인 주 교통부는 2014년 재판에서 KKK에 패한 뒤 주대법원에 상소했었다.
‘하이웨이 입양(Adopt-A-Highway)’으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의
사인판은 전국 어느 간선도로에서도 볼 수 있다. 정부당국은 1마일
구간의 하이웨이 청소를 자원해서 책임진다고 공개 청약하는 기업체나 사회단체의 이름을 사인판에 기입해 광고효과를 올려준다. 당시 KKK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통과하는 515번 도로의 1마일 입양을 떠들썩하게 신청했었다.
조지아주 교통부는 하이웨이 입양 사인판에 인종차별단체인 KKK 글자가
들어가는 건 사회정서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퇴짜를 놨다.
KKK는 수정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의 침해라며
미국 인권자유연맹(ACLU)을 통해 제소, 2년만에 승소판결을
받았고 교통부는 주 대법원에 상소했다가 이번에 또 패소했다. 이 케이스가 연방 대법원까지 갈 것 같지는
않다.
KKK는 회원이 최근 빠르게 늘어난다고 큰 소리 친다. 백인 기독교신자면 누구나 온라인으로 쉽게 가입할 수 있고 유니폼인 흰색 면제품 백두건 도포를 145달러(공단은 165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KKK의 전체 회원 수는 아무도 모른다. 관계기관들은 현재 KKK의 전국 지부가 190여개에 불과하고 전체 회원도 줄잡아 6,000명을 밑돌 것으로
추정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불타는 미시시피(Mississippi
Burning)’에서 유대인 두 명과 흑인 한명을 죽인 KKK 단원들을 쫓는 FBI 요원(진 해크먼)은 KKK 단원인 지역 셰리프대원들의 방해로 애를 먹는다.
지난 187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500여 KKK 단원들이 흑인죄수 8명을 살해했지만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 그곳 경찰관들 역시 KKK 단원들이었다.
루이지애나와 미네소타에서 잇달아 경찰 총격사건이 터져 전국 각지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예외가 없진 않지만 총 쏜 경관은 백인, 맞아죽은 시민은 흑인인
것이 공식처럼 돼있다.
이번 두 사건에 연루된 백인경관들도 KKK 단원일지
모른다고 말하면 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들의 총격에 KKK는 분명히 박수를 보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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