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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11 11:32
[시애틀 수필-안문자] 산타크로스의 꿈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033   추천 : 0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산타크로스의 꿈

 
우울한 12월이다
빗줄기에 지친 낙엽처럼 곤비한 삶의 여정에도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가로수에는 별을 닮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상점마다 눈을 끄는 상품들과 포인세티아의 물결이 손짓한다.

흰 수염 대롱대는 산타 할아버지, 상가의 문을 열고 “헬로우, 메리크리스마스! 호호호!” 하며 손을 들어 올린다. 산타의 웃음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내가 처음 산타 할아버지를 본 것은 평양에서다. 625가 일어나기 한참 전이었으니 몇 살이었을까? 어느 겨울, 언니와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전차를 탔다

‘얘들아 저-기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있다!’ 아버지가 손짓한 곳에 빨간 옷을 입은 뚱뚱보 할아버지가 흰 수염을 날리며 서있었다. 큰 자루를 둘러 멘 산타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온다며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오늘 밤에/하얀 머리털과 하얀 수염을/바람에 휘날리며-오시네. 붉은 모자 눌러쓰고/함박눈 맞으며 오시네. 어여쁜 아이들아/기뻐 춤을 추며/구세주 아기 예수 탄생 경축하라/산타크로스 할아버지 멀리 와서/우리에게 선물을 주려하-.

언니는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곡은 미국 남북전쟁 때의 군가였고 가사는 누구의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전차 안에서 본 산타는 소련에서 왔다고 했다. 그해 산타 할아버지는 붕어과자와 빨간 줄이 있는 눈깔사탕을 한 봉지씩 놓고 갔다. ‘너희들이 착하다고 산타 할아버지가 왔었어.’ 크리스마스 날 아침, 젊었던 엄마의 다정한 미소가 어른거린다

우리 아이들이 서너 살 때부터 나도 산타의 역할을 대신했다. 아이들이 잠들면 산타 할아버지의 몫인 우유와 과자를 남편과 함께 먹어 치우고 아이가 써놓은 편지도 살짝 보았다

가슴이 두군 대던 젊은 엄마는 참 즐겁기도 했지. ‘산타 할아버지가 너희들이 필요한 것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의 능청은 해마다 늘어갔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엄마가 산타라는 것을 눈치챈 것 같지만 선물을 받고 싶어선지 묻지 않았다

아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엄마는 몇 년 더 가짜라는 사실을 덮고 공범자가 됐다. 어느 해 나는 산타의 편지를 선물과 함께 놓았다.

나 산타는 온 세상에 어린이들이 너무 많아서 이젠 다른 나라의 아이들에게 가야 해요. 우리 아무개 참 착했어요. 공부도 잘했어요. 큰 어린이가 됐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어요. 안녕, 안녕!

이미 편지를 읽은 큰 녀석은 시침을 뗐고 둘째는 서운한 표정이었다. 다음 해부터 산타는 더 이상 우리 집을 찾지 않았다.

산타크로스는 4세기경 터키 지역에 살았던 성 니콜라스라는 실존인물의 모델이라고 한다.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던 이야기가 유럽과 미국에 전해지면서 아이들의 환호 속에 산타크로스가 등장했다

성 니콜라스는 어느 가난한 귀족의 딸들이 가난이 지겨워 나쁜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돕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도 모르게 창문으로 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던져주어 큰 딸에게 희망을 주었다

추운 겨울 밤, 다른 딸을 위해 다시 창문가로 갔으나 창문이 닫혀있어서 굴뚝으로 금 주머니를 넣었더니 난로 옆에 걸려있던 양말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나. 이때부터 성탄 선물을 양말 속에 집어넣는 풍습이 생겼단다. 그러니까 산타의 정신은 자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렵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한 것일까. 아이들이 클 때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산타가 온 것처럼 했으니 얼마나 가족이기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었던 걸까. 산타에게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불우한 아이들에게 주어야 되는 건데. 나를 빙자하여 자기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다니. 쯧쯧.’ 하지 않았을까.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람이 더 착한 어린이라는 것을. 산타 할아버지는 불쌍한 어린이들을 위해 오시는 거라고 가르쳤어야 했는데 이젠 늦었지. 

이미 그들도 산타가 되었으니. 그럼에도 꿈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으리라.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들, 며느리가 두 손자를 데리고 왔다. 주문한 산타의 선물이 배달되면 숨겨놓으라고 뉴욕에서 전화까지 했다. 크리스마스 포장지를 사오며 숨겨놔야 된다면서 쉿,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으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나보다 더한 극성에 웃음이 났지만 젊은 날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꼬맹이들이 방방 뛰며 기쁨으로 흥분하는 모습은 우리만 보기에 아까웠다

그래, 착한 어린이를 강조한 산타의 선물을 받으며 우리 손자들이,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착하게 자라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며 도우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아이들과 장단을 맞추었다.

누군가 12월을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했다. 금년에도 숱한 곳에서 굶고 병든 어린이들을 위해 예수님이 산타 할아버지처럼 오실 게다. 어린이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어른들은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다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다 주고 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도 그 사랑을 닮아 작은 산타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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