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믿음의
기능(1)
성경에
‘믿음’이라는 단어가 490번이나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단어의 의마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믿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히브리서11장 1절에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즉 믿음은 우리가 희구하는 어떤 대상을 이미 획득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주며 또한 보이지 않는 대상의 실체를 증거하는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믿음이란 우리의 긍정적인 사고나 낙관적인 견해에 따라 설정한 어떤 희망사항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시마
약속하신 내용들을 온전히 신뢰케 하시는 선물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믿음에 대한 설명도 자연히 따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첫째: 믿음은 소극적인 면에서 볼 때
근심ㆍ걱정ㆍ불안ㆍ슬픔ㆍ고통 등 역경을 극복케 하는 신비로운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식주의 문제로
근심하며 염려하는 이들에게 공중에 나는 새를 보고,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면서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산다면 그 분이 지시하시는 길을 따라 하늘나라 건설과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에 진력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당연히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왜 의심하느냐 하는 질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 많은 고통과 슬픔과 불안을 겪게 됩니다마는 그 어떠한 역경이든지 믿음으로 극복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해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온 몸에 엄청난 화상을 입고 수십차례의 수술 끝에 생명은 구했지만 옛날의 얼굴 모습은 완전히 잃은 이지선양의 눈물겨운 간증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지선양이
사고를 당한 후 병원 응급실에서 그토록 끔찍한 상처를 입고 신음하며 생사의 기록에 있을때 교회 목사님이 찾아와 그 참혹한 상태를 보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와 그녀의 어머니와 마주 앉았습니다. 기력이 탈진된 채 울고만 있는 그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은 목사님은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얼마 동안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눈물의 침묵이 흐른 뒤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은 목사님의 입에서 짤막하지만 숙연하면서도 강력한 한마디가 흘러나왔습니다.
“권사님… 이 때를 위한 믿음입니다” 어머니의 흐느낌이
잠시 멎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총명한 대학4년생 딸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그 애끓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할 힘이
믿음 말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일제의
탄압과 공산 치하에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그 모진 구타와 고문과 죽음의 고통까지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금석같이 강인한 믿음에서 나온 영력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난관과 역경에 따르는 아픔과 눈물과 탄식의 고통을 막아내는
영적 방패입니다. 이 믿음으로 수 많은 시련을 극복한 선조들이 그 체험을 찬송으로
전해주고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온갖 풍파를 만날때 마다,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라는 찬송으로
힘을 얻고,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라는 찬송에서 한 없는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얻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인생의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은 신비한 능력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칼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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